“화장실 없는 집에서 살 수 있습니까?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없는 원전은 화장실 없는 집과 같은 처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핵폐기물(사용후 핵연료) 보관을 위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며 이 같이 지적했습니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에 보관돼 있는데, 관련 공간 포화로 추가 저장시설을 마련하지 않으면 원전 가동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애초 2031년으로 예상됐던 전라남도 영광군의 한빛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 시점은 2030년으로 예상대비 1년 빨라졌습니다. 현 정부들어 수립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따라 원전 가동률이 높아지며 예상 포화 시점이 앞당겨졌기 때문입니다.
앞서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는 2021년 12월 9차 전기본을 전제로 사용후핵연료 발생량과 저장시설 포화 전망을 추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확정된 10차 전기본에 따라 계획기간 내 운영 허가 만료 설비의 계속 운전, 신한울 3·4호기 준공, 원전 총 32기 가동 등이 반영되며 저장시설 포화 시점이 재산정 됐습니다. 이에 따라 2021년 12월 당시 사용후핵연료 예상 발생량은 63만5329다발이었으나 최근 재산정된 규모는 79만3955다발로 1년여 새 15만8626다발 늘었습니다.
원전별로 살펴보면 한빛원전 외에도 경상북도 울진군 한울원전은 기존 2032년에서 2031년으로, 경북 경주시에 있는 신월성원전은 기존 2044년에서 2042년으로 각각 저장시설 포화시점이 앞당겨졌습니다.
반면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전의 경우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 시점이 기존 2031년에서 2032년으로 늦춰졌습니다. 제9차 전기본에서는 핵연료 간격을 줄여 전체 저장용량을 늘리는 장치인 ‘조밀저장대’ 설치를 검토하지 않았지만, 10차 전기본에서는 해당 원전의 계속운전이 반영되면서 조밀저장대를 설치하는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입니다.
원전 업계에서는 7년 후부터 원자로에서 연료로 쓰인 뒤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 보관 시설이 포화하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원전 가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정부 또한 팔짱만 끼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1978년 고리1호기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9차례에 방폐장 부지 선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2005년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를 경주로 선정했으나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은 2009년부터 이어진 공론화 절차에도 지역 주민 반발과 여론 반대에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당장 7년 뒤에 원전을 계속 가동하려면 부지 내 저장시설이라도 신규 건립해야 합니다. 문제는 부지 내 저장시설 안전성을 확보하려면 7년가량의 건설 기간이 필요해 올해 공사를 시작하지 못할 경우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 관련 법과 제도 마련은 진척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서는 고준위 방폐물과 관련한 관리체계, 부지선정 절차, 원전 내 저장시설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법안 3건 발의돼 있으나 이제 겨우 공청회를 마쳐 법안 통과까지는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승렬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국장은 이에 대해 “고준위 방폐물 관리 문제는 장기간 난제로 남아있었으나 10여년의 공론화를 거쳐 3개의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인 만큼, 이제는 법안의 조속한 통과가 절실한 시점”이라며 “저장시설 포화에 따라 한시적으로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 건설은 불가피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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