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스타트업인 리벨리온이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출시하며 미국의 엔비디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문가들은 첨단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해 리벨리온이 단시간 내에 따라잡기는 힘들겠지만 챗GPT 등 생성형 AI 열풍으로 시장이 확대된다면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13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리벨리온이 AI 반도체 ‘아톰’을 이날 출시했다고 보도했다. 아톰은 한국 최초로 챗GPT의 원천 기술인 ‘트랜스포머’ 계열의 자연어 처리 기술을 지원한다. 트랜스포머 모델이란 문장 속 단어 같은 데이터 내부의 관계를 추적해 맥락과 의미를 학습하는 신경망을 뜻한다. 이미지 검색 같은 ‘비전 모델’로도 활용할 수 있다. 작업 범위를 효율화해 전력 소비량을 엔비디아 A100의 20% 수준까지 줄인 것이 장점이다.
자산운용사 제프리스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지난해 12월 세계 6대 클라우드 서비스 내 최첨단 AI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86%에 달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KIET) 전문연구원은 로이터에 “범용 AI 반도체 시장에서 앞선 엔비디아를 따라잡기는 어렵다”면서도 AI 반도체 활용 분야에는 경계선이 없기 때문에 이는(시장 점유율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프레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올해 218억 7000만 달러에서 2032년 2274억 8000만 달러로 10년도 되지 않아 10배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리벨리온은 지난해 6월 아톰의 설계를 완료했고 삼성전자 파운드리 5나노 극자외선(EUV) 공정의 제조를 거쳐 이번에 완성품을 출시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에서 개발자로 일한 박성현 현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4명이 2020년 9월 창업한 이 회사는 출범 1년 만에 TSMC의 7나노를 적용한 파이낸스용 반도체 아이온을 출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KT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자회사 파빌리온캐피털, 한국 정부 등으로부터 9600만 달러(약 1220억 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리벨리온은 상반기 출시 예정인 KT의 초거대 AI 서비스 ‘믿음’ 경량화 모델에 아톰을 탑재할 계획이다. 리벨리온은 KT가 주도하는 한국형 AI풀스택의 일원으로 정부 주도 사업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이날 로이터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한국이 AI 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경쟁자를 키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의 국산 AI 반도체 점유율을 8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총 8262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보기술(IT) 리서치 회사 가트너의 앨런 프리스틀리는 “엔비디아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모멘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스타트업이 모멘텀을 구축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한국 정부가 발표한 인센티브 등은 한국 내 시장 점유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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