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주요 기념관에는 백마에 올라탄 김일성 전 주석을 묘사한 그림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백마를 타고 만주 일대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거나 후계자 김정일로 추정되는 아이를 태우고 백두산 천지를 달리는 모습 등이다. ‘백두혈통’을 상징하는 백마를 활용하는 이미지 전략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북한의 선전 매체는 김정일 위원장이 선글라스를 낀 채 백마를 타거나 후계자인 아들 김정은과 승마를 즐기는 장면을 수시로 내보내곤 했다.
세습이 거듭될수록 백마 이미지는 더 절실해지는 것일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때만 되면 백마에 올라 어딘가를 누볐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8개월 만인 2019년 10월에는 백마를 탄 채 백두산 일대를 달렸다. 지난해 2월에는 한 손으로 백마의 고삐를 잡고 고속 질주하는 모습이 1시간 넘는 기록 영화를 통해 공개됐다.
‘백마 타는 특권’은 이제 10세가량에 불과한 김정은 위원장의 딸 김주애에게로 이어졌다. 이달 12일 조선중앙TV에 따르면 8일 열린 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녹화중계 화면에 김주애의 것으로 보이는 백마가 등장했다. 이 매체는 “우리 원수님 백두전구를 주름잡아 내달리셨던 전설의 명마, 백두산 군마가 기병대의 선두에 서 있다”며 “사랑하는 자제분께서 제일로 사랑하시는 충마가 그 뒤를 따라 활기찬 열병의 흐름을 이끌어간다”고 전했다.
김 씨 일가가 4대 세습을 위해 백마에 집착하는 사이 북한 주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6월 ‘민생고’ 해소를 위한 특별명령을 최고지도자 명의로 발표한 것은 그만큼 주민들의 생활이 어렵다는 점을 방증한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뒤인 지난해 11월 북러 열차 운행을 2년 만에 재개하면서 가장 먼저 반입한 것은 민생 물자가 아니라 김 씨 일가와 고위층용 말 수십 마리였다. ‘김주애 백마 쇼’를 보고 있자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에 못지 않은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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