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요? 아예 없어요. 평소 같으면 금요일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주말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겠죠. 불경기도 이런 불경기가 없네요.”
금요일인 17일 서울경제 취재진이 찾은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가구거리는 적막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개학·이사·신혼집 마련을 앞두고 가구를 사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일 법도 하지만 이날 거리에서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구를 사러 온 손님은커녕 가구 매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조차 드문드문 보였다. 거리 곳곳에 ‘반값 세일’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고 한 집 건너 문을 연 점포 주인들은 수심 깊은 표정이었다. 심지어 ‘무인 판매’라는 간판을 붙여 놓고 가구를 파는 매장도 있었다. 폐업하는 점포 주인이 물건을 정리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싼값에 일단 가져가고 나중에 입금하라는 것인데 물건을 가져가고 돈을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현동에서 16년째 가구점을 운영한다는 A 씨는 “주말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다”며 “어쩔 수 없이 문은 열어 놓지만 마음 같아서는 가게를 접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동산 경기 한파의 여파가 점차 깊어지고 있다. 집을 사고파는 사람이 줄고 특히 ‘임대차 3법’으로 전세 거래까지 묶이자 가구·인테리어·포장이사 등 관련 산업의 불황이 길어지고 있다. ‘코로나 특수’ 수혜를 입었던 국내 주요 가구 기업들은 지난해 줄줄이 적자로 돌아섰다. 한샘(009240)은 지난해 217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가구 업계 1위인 한샘이 연간 영업적자를 낸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매출 역시 2조 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4% 줄었다. 리모델링 분야의 매출이 24.8% 줄었고 가구 판매가 14.3% 빠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한샘 관계자는 “주택 거래량과 가구 수요가 줄면서 실적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현대리바트(079430)도 지난해 185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12년 현대백화점이 인수한 후 적자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 간 거래(B2B), 기업 소비자 간 거래(B2C) 분야의 가구 매출이 각각 2.5%와 9.1% 줄었다. 건자재가 주력인 LX하우시스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이 149억 원으로 전년 대비 78.8%나 쪼그라들었다.
대형 가구 업계의 상황이 이러니 동네 소규모 가구 매장은 물론 인테리어·포장이사 업계는 폐업을 고민할 정도로 사정이 악화됐다. 심지어 용달 화물 운수업자들도 주택 거래 위축으로 입는 타격이 적지 않은 모습이다. 서울 양천구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B 씨가 올 2월에 맡은 공사는 단 1건이다. 평소 이맘때 5~6건 정도를 수주했던 것과 비교하면 “거의 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B 씨의 전언이다. B 씨는 “이번에 맡은 공사도 집과 작업장 거리가 멀어 예전 같으면 마다했을 일”이라며 “경기도 용인까지 1시간 넘게 트럭을 운전해서 가야 하지만 이것마저도 안 하면 이번 달 수입이 아예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B 씨 같은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사상철 한국인테리어경영자협회 회장은 “일감이 없어 노는 업체들이 상당히 많다”며 “일단 올해까지만 버텨 보자는 생각을 하는 업체가 많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직원을 내보내는 경우도 많다. 아현동에서 장롱 위주로 가구를 판매하는 B 씨는 “3개월 전 직원 한 명이 나갔지만 뽑지 못하고 있다”며 “월세 내는 것도 버거워 직원을 두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고 전했다. 매출이 줄다 보니 주인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폐업을 고민하는 소상공인들도 허다하다. 아현동 가구거리에서 만난 한 매장 점주는 “옆 가게 점주가 얼마 전부터 월세 내는 것조차 힘들어하면서 폐업을 고민하더니 결국 며칠 전 문을 닫았다”며 “이사철을 앞둔 시기는 가구점들이 이사철 특수를 기대하는 시기인데도 손님이 이렇게 없으니 폐업하는 가게들을 보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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