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기 흐름이 둔화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17일 ‘2월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우리 경제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 ‘경기 둔화 가능성’을 경고했던 정부가 이달에는 ‘경기 둔화 시작’이라는 보다 비관적인 평가를 내놓은 것입니다. 우리 경제가 경기 둔화 국면에 진입한 것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처음입니다. 정부의 진단이 바뀌게 된 배경을 뜯어보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떨어진 소비 활력입니다. 이승한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그간 소비는 괜찮았지만 수출이 꺾여 경기 둔화가 우려된다고 표현해왔다”며 “그런데 최근에는 소비마저 주춤한 모습을 보이면서 경기 둔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을 바꿨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고물가 장기화로 실질소득이 줄어 지난해 4분기 민간 소비는 전기 대비 0.4% 감소했습니다. 가전제품과 의류 등 재화 소비는 물론 코로나19 방역 해제 이후 소비 증가세를 이끈 숙박·음식점 등 서비스 소비까지 부진했던 영향입니다.
문제는 당분간 소비 활력이 되살아나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먼저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지난달 물가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5.2%를 기록, 3개월 만에 상승 폭이 커졌습니다. 또한 최근 미국의 긴축이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며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 재개(리오프닝)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수입 물가가 올라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는 것이죠. 국민들의 씀씀이는 더욱 줄어들 공산이 큽니다. 이 같은 이유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3.1%에서 2.8%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수출 감소세는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6.6% 줄어 직전 달인 지난해 12월(9.5% 감소)보다 실적이 악화했습니다. 반도체(45% 감소) 등 정보기술(IT) 품목 실적이 예상보다 더 나빴죠. 정부는 당분간 물가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두되 경제 활력을 높일 방안을 함께 강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경제 활력은 떨어지는데 공공요금 인상, 다시 꿈틀대는 환율 등 물가를 자극할 악재가 여전한 상황에서 최적의 정책 조합을 내놓아야 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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