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둔화로 반도체 시장이 침체기에 빠진 가운데 곽노정 SK하이닉스(000660) 최고경영자(CEO)가 메모리 분야의 ‘업턴’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업계에서는 챗GPT 등 새로운 인공지능(AI) 기술의 출현으로 4분기에 고성능 메모리 시장에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정기총회에 협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곽 사장은 하반기 반도체 시장 수요 전망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4분기에 회복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챗GPT가 새로운 ‘킬러 애플리케이션’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며 “어쨌든 1~2분기 정도 회복세가 당겨지거나 늦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장 회복 시기와 상관없이 기술 개발에 집중하면서 비용 절감, 체질 개선, 고객 만족에 집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적어도 올해 상반기까지는 메모리 반도체 불황이 지속될 것으로 관측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양적완화 이후 물가·금리 인상으로 정보기술(IT) 기기에 대한 소비자 구매 심리가 상반기까지 꽁꽁 얼어붙을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챗GPT 등 AI 분야에 대한 글로벌 빅테크들의 예상치 못한 투자로 ‘메모리 상승 사이클’이 올 하반기 이전에 다가올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김재준 삼성전자(005930)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부사장 역시 지난달 말 열린 2022년도 4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언어 모델 AI의 서비스 확장에 따라 하드웨어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며 “시장이 요구하는 고성능·고용량 메모리 개발을 통해 AI 서비스 관련 수요 증가세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시장의 호재에 따라 업계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3월 전문가서베이지수(PSI) 조사에서 반도체 전망치는 전월 대비 24포인트 오른 67을 기록해 업종별 가장 큰 상승 폭을 나타냈다.
◇트렌드포스 "D램 수요, 4분기에 공급 추월"…"공급과잉 우려" 한달만에 지웠다
메모리반도체의 긴 겨울이 끝나 가는 것인가.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시장 전문가들은 이르면 3분기부터 메모리반도체의 침체기가 끝날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도 ‘초거대 인공지능(AI)’ 챗GPT의 등장으로 촉발된 글로벌 AI 분야에 대한 투자 급증, D램 제조사들의 감산·원가 절감이 맞물리면서 ‘업사이클’이 더 빨리 찾아올 것이라는 얘기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적인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이달 15일 2월 D램·낸드플래시 리포트를 내고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올 3분기부터 올해 처음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분기까지는 낸드 공급량이 수요를 7%나 웃돌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하반기 들어서자마자 상황이 역전된다는 진단이다.
트렌드포스는 D램 분야에서 불과 한 달 전에 냈던 자체 리포트와 상반된 분석도 발표했다. 이들은 올 1월 당시 글로벌 D램 수요량이 공급을 앞지르는 경우가 연내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관측했다. 하지만 이들은 올 3분기 들어 메모리 수요·공급이 상당히 근소하게 좁혀지고 4분기부터는 수요 물량이 공급을 0.65% 앞지를 것이라며 예측을 수정했다.
메모리반도체 호황세가 앞당겨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챗GPT라는 혁신적인 AI 서비스 등장으로 예상치 못한 반도체 수요 증가와 반도체 제조사들의 적극적인 감산·재고 조정 등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는 미국 오픈AI사가 내놓은 대화형 챗GPT 등장으로 반도체 수혜를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등장한 챗GPT는 출시 2개월 만인 올해 1월 월간활성사용자 1억 명을 넘을 만큼 세계적인 유행을 타고 있다. 상황을 감지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경기 둔화 이슈에도 불구하고 AI 인프라 투자와 신제품 공개를 시작했다. 오픈AI 초기 투자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달 향후 수년간 총 100억 달러(약 13조 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구글은 챗GPT에 맞설 AI 챗봇 ‘바드’ 출시를 공식 발표했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AI 인프라인 ‘서버’ 증설을 위한 필수 부품이다. 이미 IT 업계에서는 AI 데이터 연산에 필요한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칩 주문량이 쏟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GPU의 연산을 보조하는 메모리반도체 물량도 덩달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D램 시장의 주요 매출원인 서버·PC·스마트폰 D램 분야 중 서버 제품 수요는 전년 대비 16.07% 성장할 것으로 예측돼 성장 폭이 가장 크다.
황민성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AI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시작한 것은 반도체 사이클 개선을 앞당길 수 있는 주요한 배경”이라며 “소프트웨어의 발전은 하드웨어의 업그레이드를 불러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서버용 고성능 메모리 부문의 강자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큰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메모리 업체들이 상반기 적극적 감산에 나서는 것 역시 반도체 사이클을 앞당길 수 있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D램 2위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투자를 전년 대비 50% 이상 줄이면서 저가용 D램을 생산하는 중국 우시 공장의 웨이퍼 생산량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이미 지난해부터 20% 감산을 시작했고 일본 기옥시아, 미국 웨스턴디지털 등도 생산량 감축에 나서며 재고량 조절에 나섰다. 곽 사장은 17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정기총회에서 기자를 만나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사이클 회복 여부와 상관없이 기술 개발에 집중하면서 비용 절감과 체질 개선, 고객 만족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