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 자유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 간 ‘대리 세계전쟁(a proxy world war)’이라는 측면에서 1950년 한국전쟁과 닮았다. 6·25 전쟁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화했던 것처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신(新)냉전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통상 전략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칩4·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은 모두 블록화 움직임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의 대만 침공 위험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실제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가 86억 달러를 투자해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도 기술 패권을 내준 일본이 신냉전 국면에서 재도약을 노리는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나라도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의 효력이 다했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실제 한국은 미국이 구축 중인 대(對)중국 포위망의 핵심이자 약한 고리로 꼽힌다. 반도체·2차전지 등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만들어내면서도 지정학적 한계와 대중 의존도가 높은 탓이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전 세계 경제의 블록화로 중국 시장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늘어나고 있고 반도체 사례에서 보듯 중국 시장 접근 노력 그 자체가 미국 기술의 사용을 제한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며 “진출 시장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중국 내 공장 유지 문제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중국에 대한 현실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국책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고래 사이에서 새우 등 터지는 일이 없도록 상대방을 자극할 만한 행위는 가급적 최소화하려는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중동, 유럽연합(EU), 인도 등의 신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해 1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미국·중국·아세안 등 3대 주력 시장과 중동·중남미·EU 등 3대 전략 시장을 제시했다. 이들 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큰 데다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핵심 광물도 풍부해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중동은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오일머니로 ‘네옴시티’ 등 국내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 기회를 살려 제2의 중동 붐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 국제대학원 교수는 “20년 뒤에는 인도와 중국이 비슷해지고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가 세계 5대 강국으로 올라설 것”이라며 “다극화된 세계 질서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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