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증권사에 ‘법인 지급 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은행권이 내수 시장에서 이자 장사로 손쉽게 돈을 번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해당 안이 전격 도입될 경우 증권사와 은행 간 기업 계좌 유치 경쟁이 불붙어 과점 논란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증권사의 법인 지급 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당국은 향후 TF와 실무작업반을 운영한 뒤 6월 말 이와 관련한 최종 결론을 낼 예정이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업계 의견을 들어보는 단계”라고 말을 아꼈다.
정부는 2006년 이후 현재까지 자산관리계좌(CMA) 등 개인투자자에게만 증권사 계좌를 통한 송금을 허용하고 있다. 법인은 은행의 가상계좌를 반드시 거쳐야만 이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증권사가 법인 지급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면 기업들은 은행을 통하지 않고서도 제품 판매 대금 지급과 협력 업체 결제, 공과금 납부 등을 증권사 계좌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증권사 계좌가 월급 통장이 돼 회사가 직원들의 급여를 증권사 계좌에 바로 보낼 수도 있다.
기업 시장이 워낙 방대하고 파급효과도 커 법인 지급 결제 허용은 증권 업계의 최대 숙원이었다. 금융투자 업계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7월에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와 간담회를 열고 법인 지급 결제 허용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부터 요구했다.
증권 업계는 은행권을 향해 ‘불황에도 폭리를 취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현시점을 제도 개선의 최대 기회로 보고 있다. 대형 증권사 상당수를 대기업이 소유한 만큼 제도가 바뀌면 시장 판도가 단숨에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변수는 은행권의 강한 반발이다. 은행들은 증권사 결제망의 안정성이 은행보다 떨어진다는 이유로 관련 제도를 지속적으로 반대했다. 금산분리 원칙이 훼손될 수 있는 점도 반대 논리로 들었다. 증권사가 자칫 재벌의 사금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제기됐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정부가 증권사 법인 지급 결제 허용을 은행권의 투자일임업 진출과 맞바꿀 수 있다는 예상도 한다. 투자일임업은 현재 증권·보험·운용·자문사에만 허용됐고 은행은 자문업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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