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황이 악화 일로를 걸으면서 지난해 주가가 부진했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이 기술력을 앞세워 올 들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가입해 유명세를 탄 ‘필승코리아 펀드’는 연초 이후 11.6%의 수익을 올렸다. 금융 투자 업계는 중국의 정보기술(IT) 기기 수요 회복을 타고 일본을 제친 소부장 업체들의 추가 상승에 기대를 나타냈다. 다만 반도체 제조 업체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때까지 상승 여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반도체 장비 업체인 원익IPS(240810)의 주가는 올 들어 25.5% 상승했다. 원익IPS는 일본과의 무역 분쟁 이후 공정 장비 국산화를 주도해 삼성전자(005930)의 핵심 협력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다른 장비 업체인 피에스케이(319660)(15%)와 이오테크닉스(039030)(14.7%) 역시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온기는 소재·부품 관련주에도 번져 동진쎄미켐(005290)(19.03%)과 솔브레인(357780)(7.4%) 등의 주가도 강세를 나타냈다. 솔브레인은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중 하나인 불화수소를 2020년부터 국산화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NH-아문디 필승코리아 국내 주식형 펀드’도 연초 이후 11.6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필승코리아 펀드는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국내 소부장 기업 육성을 표방하며 2019년 8월 출시됐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등 대형주뿐 아니라 HPSP·코윈테크·이수페타시스·동진쎄미켐 등 소부장 종목들을 담고 있다. 필승 코리아 펀드는 출시 이후 74%의 수익률을 기록해 극일의 상징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감도 소부장주의 주가를 밀어올렸다. SK하이닉스(000660)와 마이크론 등 주요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이 감산에 나서면서 수요가 증가할 시점이 앞당겨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중국의 경기 부양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1월 중국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2959만 대로 지난해 12월 대비 41% 증가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006800) 연구원은 “중국 스마트폰 수요 회복과 대규모 데이터 센터(하이퍼 스케일러)의 투자 재개 등의 영향으로 상반기 반도체 수요가 촉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연초 랠리로 소부장주의 높아진 평가가치(밸류에이션)가 부담스러운 수준에 달했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증권은 반도체 장비 업체인 원익IPS의 투자 의견을 보유로, 목표 주가는 3만 2000원으로 하향했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재 시장이 생각할 수 있는 평가가치는 반도체 사이클 회복 국면에서 주가수익비율(PER) 20배 수준”이라며 “연초 대비 20% 넘게 상승한 시점에서 추가적인 평가가치 확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소부장 업체들의 본격적인 수익성 개선 시점을 쉽게 점칠 수 없는 것은 향후 변동성을 키울 요인으로도 꼽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반도체 생산 업체들은 공급 및 투자 감소 등을 통해 연내 업황 개선을 유도할 수 있지만 소부장 기업들의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황민성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재고가 크게 줄어야 다시 생산을 위해 투자를 할 수 있는데 그 시점이 내년이 될지 그 이후가 될지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도체 업황이 살아난다고 해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으면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수익성은 개선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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