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할 때가 되면 평생 모은 노후자금을 어떻게 쓰면서 투자할까 하는 고민이 커진다. 돈을 꺼내 쓰는 인출기에는 고수익보다 손실을 피하는 것이 주안점이 된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리를 꼼꼼히 따져야 제대로 된 인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목돈을 만들기 위해 적립식으로 주식 투자를 할 때는 단기에 주가가 하락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싼 가격으로 주식을 더 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최종 목표 시점에 주가가 초반보다 높다면 큰 보상을 받는다. 심지어 초반보다 어느 정도까지는 떨어져도 수익이 난다.
그러나 거치식으로 투자하고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인출하는 상황이라면 초기 수익률 관리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인출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투자액이 줄기 때문이다. 투자액이 큰 초기에는 조그마한 주가 등락에도 손익 변동이 크지만 말기로 가면 남은 액수가 얼마 되지 않아 손익은 무시할 만하다. 그래서 인출할 때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초기 수익률 관리가 중요하다. 초기 수익률 관리에 실패하면 만회가 어렵고 어쩔 수 없이 인출액을 줄이거나 인출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 노후가 곤궁해지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피하려고 원금 보전을 목표로 하면 은행 이자율 이상의 수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수익률을 높이자니 단기 손실이 두렵고, 안정적 운용을 하자니 장기 수익률이 떨어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노후자금을 모을 때는 타깃데이트펀드(TDF)처럼 리스크를 높게 가져가다가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 점차 낮추는 운용을 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초반에 채권같이 안정적인 자산에 투자하다가 점차 위험이 큰 주식 비중을 늘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다릴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것인데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 위험 수준을 높이는 것은 명백히 투자 원리에 위배된다.
인출기의 초기 투자 리스크를 낮추면서 수익률을 높이려는 고민은 자금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는 투자 전략을 탄생시켰다. 비교적 가까운 시일 내 쓸 자금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넣어두고 인출 시기가 먼 자금은 고수익 상품에 넣어두는 것이다.
원리금 보장 바구니에서는 큰 수익은 못 얻지만 적어도 손실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 바구니에서 당장 써야 할 생활비를 인출하면서 시간을 버는 동안 고수익 바구니에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긴 시간은 투자 리스크를 현저하게 낮춘다.
좀 더 세심하게 단기·중기·장기로 세 개의 바구니에 나눠서 자금을 관리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적립할 때는 TDF처럼 한 덩어리로 운용해도 되지만 인출할 때는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아서 자금을 관리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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