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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모든 시민에 난방비 지원"…'나랏돈'으로 생색내는 지자체들

野, 기초단체장 현금살포 경쟁

자체세입, 정부지원금 절반수준

안양 등은 모든 시민에 일괄지급





파주·평택·안성 등 경기 지역 주요 도시들이 최근 모든 가구나 개인을 상대로 난방비 지원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정부가 기초수급생활자 등으로 난방비 지원을 제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난방비 보편 지원에 돌입한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은 모두 자체 세입보다 중앙정부의 지원금이 더 많아 나랏돈에 기대 현금을 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7일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난방비를 지원하는 지자체가 파주·안양·평택·안성·광명시 등 경기도 기초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파주시의 경우 이달 말까지 온·오프라인을 통해 난방비 지원 신청을 받고 있다. 전 세대에 20만 원의 긴급에너지생활안정지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평택시와 광명시도 가구당 10만 원을 지급하고 화성시도 지급을 검토하고 있다. 안양시와 안성시는 가구별이 아니라 연령을 따지지 않고 모든 시민에게 1인당 5만 원을 주기로 했다.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난방비 부담 경감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지만 건전재정 기조 하에 정부 여당이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자 야당 소속 기초단체장들이 경쟁적으로 현금 지원에 나선 결과다.

문제는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이 없다면 이들 지자체가 이런 식으로 난방비를 지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파주시의 경우 지난해 예산 1조 5716억 원 중 지방세와 자체 수입은 4852억 원으로 국고보조금과 지방교부세 8127억 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다른 지자체도 형편은 비슷하다. 내국세의 40%를 지방에 의무 배정한 결과 지자체가 예산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배귀희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무차별 현금 살포보다는 하우스 농가 등 꼭 필요한 곳에 지원하는 것이 정책 효과를 높인다”며 “지자체들이 고물가 대응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구조 개편에 역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파주 442억·안양 280억…지자체 돈잔치 뒤엔 '빚더미 정부'


난방비를 선별 지원하는 대신 모든 시민에게 무차별적으로 현금을 뿌린 경기 지역 기초자치단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중앙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으로 지원 대상을 엄격히 제한했지만 이들 지자체는 소득 수준 등 가구의 형편을 따지지 않고 난방비를 대주면서 전형적인 선심성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7일 서울경제의 확인 결과 파주시만 해도 이번 난방비 지원으로 총 442억 원의 재원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택시(278억 원), 안양시(280억 원), 안성시(201억 원), 광명시(110억 원) 등 서울에 인접한 경기 지역 시들 중 상당수도 300억 원 안팎의 예산을 난방비 지원 명목으로 집행했다. 지원을 검토 중인 화성시까지 포함할 경우 경기도 내 31개 시군 가운데 6곳이 모든 가구 혹은 개인을 대상으로 난방비 지원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들 지자체의 인구는 301만 명 정도로, 경기도 전체(약 1359만 명)의 약 22%에 이른다.



지자체의 헤픈 씀씀이의 원인은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일단 포퓰리즘에 취약한 정치권의 공방이 꼽힌다. 윤석열 정부는 급등한 난방비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지만 재정 여력이 부족하다 보니 대응에 한계가 있는데 이 빈틈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저소득 취약 계층 3만여 가구에 난방비 10만 원 지급을 결정한 성남시의회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지난달 “시민 1인당 또는 가구당 최소 10만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계절 변화에 따라 난방비 이슈가 주춤하고 있지만 하반기로 예정된 공공요금 인상과 맞물려 정치적 쟁점이 될 경우 난방비 지원 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파주 28%·안성 27%·광명 33%
재정자립도 전국 평균 하회 불구
중앙정부 지원받아 난방비 살포


보다 근본적으로는 중앙정부라는 든든한 돈줄이 지자체의 뒷배가 되고 있다. 사실 이번에 난방비를 지급한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만 놓고 보면 전국 기초자치단체 226곳의 평균 재정자립도(43.53%)를 밑돈다.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파주시의 재정자립도는 28.93%, 안성시 27.29%, 광명시 33.90%, 안양시 38.90% 등이었다.

그나마 평택시가 41.56%로 40%대를 간신히 넘었다. 재정자립도가 평균에도 못 미치는데도 난방비 지원금을 뿌릴 수 있는 것은 결국 중앙정부의 지방교부세와 국고보조금 덕분이다. 안성시는 지난해 총예산(9882억 원) 가운데 52.3%를, 파주시는 51.7%를 중앙정부로부터 각각 지원받았다. 파주시의 경우 올해도 예산의 27%인 5211억 원을 국고보조금으로 충당하면서 난방비 지원금으로 442억 원을 집행한 것이다. 다른 시도 역시 사정이 비슷했다.

이렇다 보니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을 합친 중앙정부의 지방 이전 재원은 지난해 153조 원으로 2012년의 73조 4000억 원에서 10년 만에 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중앙에서 넉넉하게 돈을 지원해주니 기초단체까지 현금 살포에 나설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고물가 자극해 취약층에 부메랑
타 지자체로 도미노 확산 우려도


서울 시내 한 주택 가스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그나마 40%대 이상의 자체 세입이라면 난방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일회성에 그친다는 것이 문제다. 배귀희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보편적 지원에 둔감해지면서 앞다퉈 난방비까지 지원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며 “재정자립도가 건강하지 않은 기초단체가 현금성 지원을 늘리다가는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물가를 자극하며 취약층에 부메랑처럼 돌아와 부담을 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가 극심하던 때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던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 등 정책 당국이 인플레이션 잡기에 올인하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살포되는 현금은 정책 효과를 반감시킬 수밖에 없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난방비 지원을 확대해봐야 다른 공공요금의 인상을 막을 수 없고 전기·가스요금을 올려놓고 국민 혈세로 막는 것 또한 ‘밑돌 빼서 윗돌 괴기’에 불과하다”며 “정작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을 못 하는 일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도 “단발적이고 시혜적인 지원책은 한계가 분명하다”며 “전 가구 난방비 지원은 포퓰리즘 정책이 초래한 문제를 포퓰리즘으로 막으려는 근시안적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이런 사례가 다른 지역으로 도미노처럼 확산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세종 관가의 한 국장은 “이미 다른 지역 지방의회들에서도 난방비 지원 확대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난방비는 하나의 사례일 뿐 다른 명목으로 현금을 살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내국세 40% 지방 할당 구조' 이참에 손봐야


1월 세금이 전년과 비교해 7조 원 가까이 덜 걷히며 연초부터 세수 부족이 우려되는 가운데 내국세의 40% 이상을 지방에 강제 할당하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주는 지방 이전 재원은 지난해 150조 원을 넘어섰다. 중앙정부는 잇따른 국채 발행에도 쓸 돈이 부족해 허덕이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은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차 추가경정예산 기준 지방교부세는 77조 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76조 원이었다. 지난해 총수입(608조 3000억 원) 중 4분의 1 이상이 지방에 내려간 것이다.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분배하는 지방교부세는 내국세의 19.24%와 종합부동산세 전액으로 구성되며 17개 시도교육청에 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로 이뤄진다.

학생을 비롯해 지방 인구는 줄고 있음에도 지방 이전 재원은 커지고 있고 제대로 된 통제마저 없다는 게 문제를 키운다. 실제 이번 난방비 지원 전에는 재난지원금이 남발됐고 시도교육청은 입학축하금, 태블릿PC 나눠주기 등의 선심성 정책도 내놓았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일률적으로 내국세의 40%를 분배하는 현재의 구조는 포퓰리즘을 더 부채질할 것”이라며 “지방 이전 재원이 최소한 국회나 재정 당국의 심사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지방에 자동 할당하는 시스템은 1962년 지방교부세법, 1972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중앙정부의 채무는 올해 1100조 원을 넘길 것이 확실시되는데 지방 채무는 36조 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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