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라이벌인 TSMC에서 19년 가까이 일했던 베테랑 엔지니어 린준청 씨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회사가 적극 투자 중인 첨단 패키징 기술 개발에 속도를 올리기 위한 포석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의 인재 양성 기조에 따라 TSMC 외 인텔·퀄컴·애플 등 글로벌 최대 반도체 기업에서 임원급 인력을 영입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린 씨를 반도체(DS) 부문 어드밴스드패키징(AVP)사업팀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린 부사장은 앞으로 이 조직에서 첨단 패키징 기술 개발 업무를 수행한다.
린 부사장은 TSMC에서 1999년부터 2017년까지 일한 반도체 패키징 분야 전문가다. 이 기간에 미국 특허를 450개 이상 출원하기도 했다. 현재 TSMC가 강세인 3차원(D) 패키징 기술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TSMC에 합류하기 전에는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서도 일했다. 또한 삼성전자 입사 직전에는 대만의 반도체 장비 기업인 스카이테크에서 최고경영자(CEO)로 근무하며 패키징 장비에 대한 생산 경험을 쌓았다.
삼성전자가 경쟁 기업인 TSMC 출신 인사를 부사장 이상의 고위직으로 영입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한국과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회사 간에 고급 인력을 쉽게 내어주거나 영입하지 않겠다는 자존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패키징은 전(前) 공정을 끝낸 웨이퍼를 칩 모양으로 자르거나 배선을 연결하는 작업을 말한다. 업계에서는 패키징을 ‘후공정’이라고도 부른다.
과거 후공정은 주요 회로를 만드는 전 공정에 비해 중요하지 않은 기술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시각이 달라졌다. 전 공정으로 회로를 미세화하는 작업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서로 다른 반도체를 이어붙여 하나의 칩으로 동작하게 만드는 3D 기술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 가능성을 본 인텔·TSMC는 첨단 패키징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욜디벨롭먼트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첨단 패키징 시장 설비투자 규모 중 59%를 인텔과 TSMC가 가져갔을 정도다. TSMC는 지난해 11월 아예 첨단 패키징 생태계인 ‘3D패브릭 얼라이언스’를 조직했다. 자체 패키징 기술을 표준화해서 일찌감치 미래 시장 패권을 쥐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삼성전자의 첨단 패키징 투자는 TSMC·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회사에 비해 다소 늦은 편이다. 다만 지난해부터 패키징 인프라 구축과 인재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경계현 DS부문 사장 직속으로 ‘어드밴스드 패키징사업화’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었다. 이 TF는 올해 강문수 부사장을 주축으로 상설 조직인 ‘어드밴스드 패키징사업팀’으로 격상했다. 린 부사장을 영입하기 전에는 애플 출신의 김우평 부사장을 스카우트해 미국 패키징 솔루션 센터장으로 임명하며 인적 자원을 보강했다.
이밖에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인텔에서 첨단 노광 공정인 극자외선(EUV) 기술을 연구했던 이상훈 부사장을 영입했고 세계 최대 칩 설계 업체인 미국 퀄컴에서 자율주행차 반도체를 개발했던 베니 카티비안 부사장도 삼성전자 미국 법인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또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X사업부의 이종석 상무도 올해 애플에서 삼성전자로 이직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S급 인재가 회사 경쟁력을 이끌어간다는 이재용 회장의 철학이 반영된 조치”라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