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쩐의 전쟁’에서도 한국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중국의 경우 유럽 증시에서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과감한 승부수로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한국 배터리 업계는 고금리와 경기 침체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의 여파로 울상이다. 예정된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10조~20조 원의 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배터리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CATL은 올 상반기 안에 스위스에서 최소 50억 달러(약 6조 50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주식예탁증서(GDR)를 발행해 유럽 증시에 상장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주요 외신들은 글로벌 자금시장 상황이 개선될 경우 조달 규모가 80억 달러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 궈쉬안과 신왕다는 이미 스위스 증시에 상장했으며 지난해 각각 6억 8500만 달러, 4억 4000만 달러씩을 조달했다. 리튬 배터리 장비 제조사인 저장항커테크놀로지는 올해 스위스 증시에 처음 상장해 1억 72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중국증권감독위원회가 자국 회사의 스위스·영국·독일 상장 등을 권고하면서 중국 배터리 회사들이 해외 상장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하는 모습이다.
반면 대규모 투자를 위해 실탄이 시급한 K배터리는 입맛만 다시는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국내 3사는 올해에만 총 20조 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투자에 나서지만 자금시장 경색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지난해 초 국내에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12조 원의 투자 재원을 확보한 만큼 앞으로는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에 기대야 하는 처지다. SK온은 지난해 초만 해도 상장 전 유치(프리IPO)로 4조 원을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지난해 말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로부터 8000억 원을 유치하는 데 그쳤다. 이에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2조 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한국투자PE는 SK온에 올해 5000억 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다. SK온은 해외 투자가를 유치하는 데도 분주하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자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진 측면이 크다”고 전했다.
이는 K배터리의 투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SK온은 포드와 튀르키예에 세우려던 유럽 합작공장 계획을 철회했다. 코치홀딩스와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 인근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세워 2025년부터 연간 30~45GWh(기가와트시) 규모로 상업생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자금 확보도 원인 중 하나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계의 협력 요청에 기꺼이 응하지 못하기는 LG에너지솔루션 역시 매한가지다. 제너럴모터스(GM)와 3공장까지 합작투자를 추진해왔지만 4공장 신설에는 동참하지 않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 대신 삼성SDI가 GM과 새로운 북미 공장 건설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또 지난해 발표했던 1조 7000억 원 규모의 미국 애리조나 단독 공장 설립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투자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 속에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방안이 협의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회사들은 그동안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라 공격적인 외연 확장에 주력했다”면서도 “최근에는 글로벌 자금시장이 얼어붙고 경기 침체 우려도 커지고 있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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