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시중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이 이달 들어 2조 원 가까이 폭증했다. 미국이 당장 이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지고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환테크족’들이 달러 예금에 다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시중 원화 정기예금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달러 예금이 갖는 투자 매력이 커진 것도 자금이 몰리는 이유로 꼽힌다.
9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6일 기준 달러 예금 잔액은 574억 6600만 달러로 지난달 말(560억 6000만 달러)보다 14억 600만 달러가량 늘었다. 불과 일주일 사이 원화 환산 1조 8500억 원(1달러=1321원 기준)이나 급증한 셈이다. 국내 은행의 달러 예금은 지난해 12월 말 690억 1500만 달러로 정점에 오른 후 두 달 연속 감소했지만 이달 들어 다시 급격하게 자금이 몰리고 있다.
달러 예금이 급증한 것은 원·달러 환율이 심상치 않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잇달아 매파 성향의 발언을 내놓으면서 환테크족들이 환율 상승에 베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와 수준을 높일 경우 달러는 다른 국가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인다.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돈이 몰려 달러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월 의장은 7일(현지 시간)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최근 경제지표들은 예상보다 더 강했고 이는 최종금리 수준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앞서 예상됐던 최종금리 수준이 더욱 높아지고 금리 인상의 속도도 빨라질 것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8일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321.40원까지 치솟았고 이날 1322.2원에 마감했다.
달러 예금이 국내 원화 예금 금리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것도 달러 예금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4대 시중은행의 주력 정기예금 상품 금리(1년 만기 기준)는 9일 현재 3.7~3.83% 수준이다. 우리은행의 WON 플러스 정기예금이 3.83%로 가장 높고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이 3.7%로 가장 낮다. 하지만 이들 은행이 판매하는 외화 정기예금의 금리(1년 만기 비거주자 기준)는 4.84~5.46% 정도로 원화 예금보다 1~1.5%포인트 더 높다. 외화 정기예금은 만기 때 환율이 가입 당시보다 하락할 경우 이자보다 환차손이 더 커질 수 있는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환율 상승기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높은 금리를 주는 외화 예금이 훨씬 유리하다. 특히 최근 국내 원화 예금 금리가 하향 안정화된 상황에서 5% 이상의 고금리를 주는 외화 예금의 매력은 더욱 부각되는 상황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말부터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외화 예금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 달러 강세가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이후 환율은 예측하기 어렵고 변동성이 큰 만큼 무리하게 외화 예금에 가입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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