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 원 규모 초대형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로 기대감을 모았던 케이비제24호기업인수목적(KB스팩24호)이 수요예측 부진에 상장을 철회했다. 최근 중소형 일반 공모주 흥행으로 지난해 말 주춤했던 스팩 열기가 회복되는 듯했지만 곧바로 식는 모양새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B스팩24호는 전날 금융감독원에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오는 13일로 예정된 청약일을 나흘 앞두고 내린 결정이었다. KB스팩24호는 “회사는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했으나 최근 공모 시장의 제반 여건을 포함, 투자자 보호사항 등을 고려해 금번 공모를 추후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올해 상장을 철회한 스팩은 KB스팩24호가 처음이다.
KB스팩24호가 상장을 포기한 건 앞서 7~8일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자들의 참여가 저조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KB스팩24호는 당초 공모액 400억 원(공모가 1만 원)에 발기인 물량 100억 원을 더해 총 500억 원 규모를 목표로 했다. 이는 KB증권이 지금까지 내놓은 스팩들 중 가장 큰 규모였다. KB증권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상반기 중 상장을 재추진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KB증권이 상장을 주관한 더블유씨피(393890)(WCP)의 주가 하락 사태 이후 자산운용사를 비롯한 일부 기관들이 투심을 회복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스팩은 기업 인수합병(M&A)를 유일한 목적으로 설립하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서류상회사)다. 코스피 시장이나 코스닥 시장에 진출하려는 비상장사와 합병해 우회상장을 돕는다. 상장 후 3년 이내에 M&A를 성공하지 못하면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고 청산 절차를 밟는다. 스팩은 주식시장 변동성이 컸던 지난해 M&A에 실패하더라도 원금이 보장된다는 안정성을 갖춰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스팩을 통한 증시 상장 건수는 45건으로 2021년 25건보다 80% 늘었다.
하지만 연초 중소형 일반 공모주들의 연이은 흥행으로 스팩 투심이 약세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상장만 하면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에 형성된 뒤 상한가를 기록하는 것)’하는 공모주를 통해 단기 차익 실현을 노리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합병 가능성이 불확실한 스팩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스팩 청산 과정에서 지급되는 이자도 금리가 은행 예금 금리보다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규모 200억 원 이상 대형 스팩들은 주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나금융25호스팩(435620)(400억 원), 삼성스팩8호(448740)(400억 원) 등의 현재 주가는 공모가를 하회한다. 코스닥 최대 규모 스팩에 도전하는 미래에셋드림스팩1호는 앞서 수요예측에서 이례적으로 연기금·공제회 등 앵커 투자자를 모으는데 성공했지만 일반 청약에서는 경쟁률이 1 대 1을 넘기지 못하며 실권주가 발생했다.
이경준 혁신IB자산운용 대표는 “대형 스팩들은 IPO 대어들이 상장을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M&A 성공이 쉽지 않다”며 “심지어 상장 스팩 주가도 하락 추세라 투자자들은 청약에 참여하는 것보다 시장에서 싸게 사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IB업계에서는 오는 21~22일 NH스팩29호(225억 원 규모)의 수요예측 흥행 여부가 스팩 시장 분위기를 가늠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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