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보험 지출 규모나 용처 등에 개입할 수 없는 현행 건강보험국고지원제도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우 특이하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의료 업계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수익원인 건보 지출 규모를 스스로 정하는 현재의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12일 재정 당국에 따르면 OECD는 프랑스 파리에서 ‘보건 분야 예산회의’를 개최하기 하루 전날인 8일 기획재정부와 별도의 양자회의를 열어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OECD는 직접 작성한 양자회의 요약 보고서에서 "정부가 보험 지출을 전혀 확인할 수 없고 지출 증가율을 결정할 수단도 없는데 자동적으로 정부가 건보 재정에 예산을 투입하는 현재 상황은 '매우 특이하다(highly unique)'"고 했다. 이어 "대부분의 OECD 회원국들은 아무리 의료보험 기금이 독립적이고 하더라도 정부의 심의, 국회의 심의·동의 절차를 거쳐 의료 지출을 정하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2007년 이후 당해 건보 수입의 20%를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규정한 국고지원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국고지원 예산은 11조 원이다. 보건 분야 지출은 의학 전문성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는 이유에서 의약 업계가 주도하는 건정심이 건보 수입 및 지출을 스스로 정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건보 재정 지출액은 2001년 14조 1000억 원에서 2021년 77조 7000억 원으로 급속히 불어났다. 이에 정부는 건보의 기금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의약 업계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건정심 위원 25명 중 의약계 대표가 8명으로 영향력이 막대하다.
우리나라 8대 사회보험 중 국민연금 등 6개 사회보험은 모두 기금으로 운영돼 정부와 국회의 통제를 받고 회계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하지만 건보와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두 사회보험만 기금화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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