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규정된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 유럽산 핵심 광물을 포함하기 위한 공식 협상에 들어가기로 했다. 미국이 IRA법을 통해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로 방침을 정한 데다 보조금 대상에 유럽 광물까지 포함하면서 미국과 EU의 경제 분야에 대한 연대가 더욱 굳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EU는 중국을 겨냥한 철강·알루미늄 관련 국제 협정도 10월까지 마무리하기로 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도 높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10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회동한 후 이를 골자로 한 공동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EU에서 추출·처리된 관련 핵심 광물이 IRA상 (전기차) 세액공제 요구 사항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한정된(targeted) 핵심 광물 협정’에 대한 협상을 즉시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회담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EU에서 추출·처리된 핵심 광물에 대해 미국에서 추출된 것처럼 접근권을 주는 문제에 대해 노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IRA에는 북미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차가 배터리와 핵심 광물 등에 부과된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미국 내 전기차 보조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미국 우선주의’ 규정이 있다. 세부적으로는 △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배터리 사용 시 대당 3750달러 △미국 혹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 사용 시 대당 3750달러의 보조금을 각각 준다. 그 비율도 연도별로 단계적으로 오른다. 이에 한국·EU 등은 미국 측에 강력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EU는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았기에 핵심 광물 조건까지 문제가 됐고 이 사안에 한정한 협정의 체결을 양측이 논의해왔다.
미국과 EU는 또한 전기차 등에 대한 보조금의 투명성을 위해 양측의 무역기술협의회(TTC) 차원에서 ‘청정 에너지 보조금 대화’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신규 공장 건설을 두고 미국과 EU 간 보조금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피하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IRA의 출현 이후 이에 대응하려는 EU 등과 무역 관련 긴장감이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유럽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폭스바겐이 미국의 보조금 혜택을 노리고 배터리 공장의 건립 계획을 동유럽이 아닌 미국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EU의 조사에 따르면 바스프·BMW 등 독일 대기업들도 유럽을 떠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EU도 ‘그린딜 산업계획’에 따라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배터리, 히트펌프 등 친환경 품목에서 미국 등 제3국과 동일한 수준의 보조금 지급 계획을 밝히며 맞대응했다.
양측은 ‘지속 가능한 철강과 알루미늄을 위한 국제 협정’ 협상도 10월까지 결과물을 내기로 했다. 이 협정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목적으로 탄소배출량에서 세계 최다 국가인 중국의 철강과 알루미늄에 추가로 관세를 부여하는 방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협정에 대해 “두 제품의 생산량 1위인 중국의 고립이 목표인 또다른 이니셔티브”라고 소개했다.
한편 양측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대(對)러시아 제재 강화와 더불어 러시아를 지원하는 ‘제3국 행위자’를 겨냥한 새로운 조치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역시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미국과 EU는 최근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을 두고 우려한 바 있다. 양측은 성명에서 중국을 우회적으로 겨냥하며 “미국과 EU는 경제적 강압, 경제적 의존의 무기화, 비시장적 정책과 관행 등에 따른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의 이 같은 조치로 한국 기업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핵심 광물 동맹을 맺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은 중국 등 해외 원자재 비중을 줄여야 하는 데다 미국과 유럽산 전기차와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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