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주부 정모씨는 베란다에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다. 지난해 대파 가격 급등 당시 집에서 직접 대파를 키워 먹는 일명 ‘파테크’가 유행할 때 재미를 본 정씨는 이후 부추 모종과 미나리, 바질을 키우며 필요할 때마다 수확해 요리에 사용한다. 말이 ‘텃밭’이지 작은 화분과 페트병을 잘라 만든 물통 몇 개가 전부다. 정씨는 “관리에 특별히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닌 데다 한번 잘라 쓰면 금방 또 자라나 찌개나 간단한 샐러드 채소로 요긴하게 쓸 수 있다”며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보다는 가늘고 양이 적긴 하지만, 대량으로 사서 냉동하거나 버리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키운다” 홈파밍족 다시 증가
고물가와 연말 연초 한파에 따른 수확량 감소 여파로 올해 들어 시설 채소를 중심으로 가격이 폭등하자 비교적 재배·관리가 쉬운 품종을 집에서 직접 키워 먹는 ‘홈파밍(home farming) 족’이 늘고 있다. 코로나 19 당시 외출 제한에 따른 취미로 유행했던 ‘베란다 텃밭’이 ‘내돈내키(내 돈으로 직접 키워 먹는)’라는 고물가 시대의 알뜰 살림 방법으로 다시 부상한 것이다. 일부 소비자는 직접 재배 대신 ‘못난이 채소’를 저렴하게 구매하거나 게임 미션 수행으로 농작물을 받아보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식탁 물가 관리에 나서고 있다.
12일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씨앗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 신장했다. 현재 다이소에서는 상추, 열무, 바질, 깻잎, 케일, 부추, 방울토마토, 오이 등 식용 채소 씨앗을 다수 판매하고 있다. 씨앗과 배양토, 화분이 함께 포장된 소형 ‘텃밭 키트’가 코로나 19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종류가 더 다양한 씨앗 구매 고객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소 관계자는 “계절적으로 3월에 씨앗이나 화분 등 판매가 증가하긴 하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구매단가가 높아졌”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대기업부터 중소업체에 이르기까지 유기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활용한 식물 재배용 전자제품과 전용 씨앗 키트를 선보이고 있어 이를 사용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지자체 상자 텃밭 분양에 개인·단체 신청 몰려
미니 텃밭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직접 키워 먹는 상자 텃밭’ 분양도 매년 경쟁률이 치열해지고 있다. 상자 텃밭은 가로 65㎝×세로 45㎝×높이 45㎝ 크기의 자동 급수 플라스틱 상자, 토양 50ℓ, 모종(적상추·청상추)이 한 세트로 구성됐는데, 1세트에 8500원으로 정상가(4만 3500원)의 20%만 내면 된다. 가구, 혹은 단체 단위로 신청할 수 있는데 3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보이는 곳도 있다. 올해도 각 지자체가 일제히 분양 신청 접수를 받기 시작한 가운데 서울 양천구의 경우 구민들의 반응이 뜨거워 올해 분양 물량을 지난해 610세트에서 두 배 이상인 1300세트로 늘렸다. 각 자치구가 매년 2월 진행하는 주말농장 분양의 경우 실제 농장에서 2~6평 땅을 받아 4~11월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평당 1만~2만 원의 저렴한 분양비에 다양한 채소를 심을 수 있고, 김장까지 소화하는 가구까지 생기면서 경쟁률이 두 자릿수가 되는 곳들도 많다.
값싼 못난이 찾고 농산물 할인 상품권 광클까지
직접 재배는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못난이 채소’를 구매해 비용을 아끼는 사례도 많아졌다. 못난이 농산물은 맛과 영양은 상급 농산물과 다르지 않지만, 작은 흠이나 크기 등 외관상 상품성이 떨어져 가격이 상급품 대비 절반 가까이 싸다. 롯데마트는 기존엔 취급하지 않았던 ‘B+급’ 상품을 ‘상생 채소·과일’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 중인데, 지난해 매출과 올해 누적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80%, 50% 뛰었다. 이마트에브리데이도 올 2월 ‘못난이 파프리카’ 18톤을 매입해 정상가 대비 40% 저렴하게 판매했는데, 3일 만에 전량 판매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저렴하지만, 상품의 질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고객들이 많아져 매장 직원에게 해당 상품을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어글리어스’, ‘예스어스’ 등 못난이 채소를 30%가량 저렴하게 정기구독 방식으로 판매하는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공동구매 커머스 플랫폼 올웨이즈가 선보인 모바일 게임 ‘올팜’의 경우 농사를 지어 미션을 완료하면 해당 작물을 실제로 배송해주는데, 감자·당근·달걀 등을 직접 받아본 이용자들의 후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
알뜰 소비를 위한 ‘상품권 구매’도 웬만한 인기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홀수달마다 소비자 물가 부담 경감을 위해 농·축산물을 30% 할인해주는 ‘농할상품권’을 판매하는데, 최근 주부들 사이에서 구매 경쟁이 치열해졌다. 수요가 늘면서 1인당 구매 한도도 기존 10만 원에서 6만 원으로 하향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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