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를 놓고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하이브와 12일 전격 합의를 이루면서 난항을 겪던 SM엔터 공개 매수가 순항하게 됐다. 카카오는 공개 매수를 계획대로 완료하면 SM엔터 지분율이 40%에 달해 안정적 경영권을 확보한다. 하이브도 보유 중인 지분을 공개 매수에 응하며 일부 매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말 격돌이 예상됐던 SM엔터 주주총회에서도 하이브가 사내이사 후보 추천을 철회해 카카오는 SM엔터 이사회도 장악하게 된다. SM엔터를 놓고 카카오와 하이브가 이전투구를 벌여 ‘승자의 저주’에 대한 공포가 커지자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와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이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 업계 등에 따르면 하이브는 카카오가 26일까지 진행하는 SM엔터 지분 공개 매수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다. 하이브는 지난달 22일 이수만 전 SM엔터 총괄프로듀서로부터 인수한 지분 14.8%(4228억 원)와 이달 6일 1차 공개 매수 때 확보한 0.98%(280억 원)를 포함해 SM엔터 주식을 총 15.78%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는 공개 매수로 주당 15만 원에 SM엔터 지분을 최대 35% 확보할 계획이다. 지난달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장내에서 사들인 지분 4.91%를 포함하면 공개 매수 후 SM 지분은 39.91%까지 늘어난다.
하이브가 공개 매수에 응해 SM엔터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 적잖은 투자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이브는 이 전 총괄이나 공개 매수로 SM엔터 지분을 살 때 주당 12만 원에 인수했는데 카카오에는 주당 15만 원에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경영권 분쟁이 종식되면서 대다수 소액주주들이 공개 매수에 참여할 요인이 높아진 만큼 카카오가 공개 매수 수량을 얼마나 늘릴지가 변수다. 업계는 카카오의 공개 매수가 끝나면 SM엔터의 주가는 급락할 수 있다고 예상해왔다.
하이브는 카카오와 합의를 토대로 이달 말 주총을 앞두고 제출한 이사회 후보 추천도 일부 철회했다. 사내이사 후보들은 전원 사퇴가 결정됐고 사외이사는 추가 협의를 통해 결론을 낸다는 설명이다. 하이브는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4명 등 총 7명을 추천했고 이를 위해 의결권 확보에 나서왔다. 카카오와 SM엔터 연합은 11명의 사내외 이사회 후보를 추천해왔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새 경영진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와 하이브 간 전격적 합의는 양쪽이 각각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해결책이었다는 평가다. 특히 더 이상의 재무적 출혈과 평판 훼손을 감수할 수 없다는 김 창업자와 방 의장의 결단이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하이브는 카카오의 경영권 확보를 저지하려 주당 16만 원 이상의 2차 대항 공개 매수도 검토해왔다. 그러나 또 인수가를 높이는 것은 SM엔터의 적정 기업가치에 비해 과도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렸다.
업계에서는 SM엔터 인수전이 양측 자존심 대결로 번지면서 과도한 돈이 오가는 ‘포커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런 비판과 우려가 뒤섞이자 양측은 전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고 하이브가 경영권을 카카오에 넘기는 방식으로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이날 사내 공지에서 “현재 상황에서 대항 공개 매수를 진행하면서까지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초기에 설정해둔 에스엠의 기업가치를 넘어서는 비용 투입인 동시에 단지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주식시장의 과열을 보다 심화시키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는 “하이브의 결정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26일까지 예정된 공개 매수를 계획대로 진행해 추가 지분을 확보할 것”이라며 “SM엔터의 글로벌 지식재산권(IP)과 제작 시스템, 카카오의 정보기술(IT) 및 비즈니스 역량을 토대로 IT와 IP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확전 국면으로 치달았던 SM엔터 인수전이 일단 막을 내렸지만 카카오 주가는 쉽사리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 주가는 지난달 9일 7만 900원에서 이달 10일 5만 8100원까지 한 달 만에 약 18% 하락했다. 다만 하이브는 일부 지분 매각에 따른 수익이 기대되고 SM엔터 인수를 위한 추가 자금 모집 부담도 내려놓게 돼 주가는 반등의 기회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와 하이브 간 경영권 분쟁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SM엔터가 카카오에 매각되는 것을 막으려던 이 전 총괄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이 전 총괄은 무리한 욕심을 부리다 본인이 창업한 기업의 지분을 소액주주들보다 낮은 가격에 팔면서 경영권 매각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남게 됐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괄은 카카오와 CJ 등에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다 더 높은 가격을 기대하며 차일피일 매각을 연기했다”면서 “한국 엔터 업계 대부로서 명예도 잃고 실질적으로 챙길 수 있는 수익도 많이 줄어든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충희 기자 mids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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