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TK)신공항을 당 대표 1호 과제로 챙기겠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가 지난달 말 대구상공회의소를 찾아 한 말이다. 당 대표 경선이 한창이던 당시 그는 TK신공항에 대해 “1초라도 빨리 개항해야 한다”며 이달 중 특별법 통과를 약속했다. 김 대표는 TK신공항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물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대구 출신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여당은 이르면 이달 국회에서 ‘TK신공항건설특별법’을 처리할 계획이다.
정부가 TK신공항의 쟁점인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에 동의한 배경에는 이런 맥락이 자리한다. 당초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여당 주도로 발의된 TK신공항특별법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 가덕도신공항과 달리 물류 시설과 첨단 산업단지 등 공항 시설이 아닌 인근 인프라도 예타 면제 대상에 넣었는데 정부는 공항 시설에 한해 예타를 면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국비 지원 가능성도 커졌다. 기재부는 최근 국회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간 위험 분담을 위해 국비 일부 지원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래 기재부는 TK신공항특별법에 담긴 국비 지원 조항을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군 공항 이전은 기존 부지 개발비로 사업비를 충당한다는 ‘기부 대 양여’ 원칙이 있어서다. 만약 정부가 TK신공항 사업비를 지원할 경우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추진되는 사업에 국비를 투입하는 첫 사례가 된다.
자칫 TK신공항을 기점으로 정치권에서 예타 면제와 국비 지원 요구가 잇따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해 11월 발의된 ‘광주군공항이전특별법’이 대표적이다. 해당 특별법에도 광주 군공항 이전을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추진하되 필요한 경우 국비로 사업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야가 지난달 TK신공항특별법과 광주군공항이전특별법을 동시 추진하기로 합의한 만큼 예타 면제와 국비 지원 모두 TK신공항과 동일한 조건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광주광역시가 2014년 광주 군공항 이전 계획을 발표할 당시 추산한 사업비는 5조 7480억 원으로 공항 내 미군 장비 이전비(1조 원)와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현 사업비는 10조 원을 넘어설 수 있다.
문제는 경제성이다. 대한교통학회가 최근 박사 학위자와 기술자 자격증 소지 회원 1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67%)은 TK신공항과 광주 군공항 이전에 대한 예타 면제를 반대했다. 예타 면제 시 투자 대비 효용 등 경제성을 제대로 따져보지 못해 사업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질 수 있다는 이유를 달았다. 특히 TK신공항은 수익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경주·포항 등 경북 남부 지역 수요가 가덕도신공항으로 분산될 가능성이 큰 탓이다.
인구 감소로 지방 소멸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전국 곳곳에 신공항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것도 문제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공항을 지으려면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오려는 인바운드 수요부터 철저하게 예측·검증해야 한다”며 “사업비가 ‘조’ 단위로 투입되는 데다 50년 이상 운영되는 공항 사업의 예타를 건너뛰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경기 둔화로 나라 살림이 팍팍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올해 ‘선심성 사업’을 쏟아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올 들어 국세 수입은 42조 9000억 원(1월 말 기준)으로 전년 동기(49조 7000억 원) 대비 7조 원 가까이 덜 걷혔다. 추 경제부총리도 최근 “전반적으로 올해 세수 상황은 ‘타이트’할 것”이라며 세수 부족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 등 정치권에서 지출을 늘리자는 요구가 클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며 “경기 흐름 악화로 세입 여건은 안 좋아지는데 건전 재정 기조는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라 고민이 크다”고 밝혔다.
예산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예타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예타 제도는 1999년 도입 이후 무분별한 토건 사업을 막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며 “정치적 논리를 따라 예타 면제 사례를 과도하게 늘리면 제도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도 “예타 면제는 사업을 깜깜이로 진행한다는 뜻과 마찬가지”라며 “예타 면제 남발은 24년째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제도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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