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파장이 이어지며 국내 증시가 ‘검은 화요일’을 맞았다. 연쇄 파산, 뱅크런(예금 인출) 등의 여파로 주가, 원화 가치가 밀리는 ‘더블 약세’에 외국인의 매도세도 가속하고 있다. 가파른 하락장에 무리하게 빚을 내 투자한 ‘빚투족’들의 반대매매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금과 같은 안전 자산이 투자 피난처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14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61.63포인트(2.56%) 내린 2348.97에 장을 마쳤다. 코스피가 2350선 아래에서 거래된 것은 1월 6일 이후 처음이다. 코스닥은 30.84포인트(3.91%)나 밀리며 758.05에 마감했다. 두 지수 모두 올 들어 단일 기준 최대 낙폭이다. 코스피200 내에서 상승 종목이 8종목에 그칠 정도로 투자심리가 바짝 움츠러들었다. 수급 주체별로는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 치우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외국인은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6398억 원과 2153억 원 등 총 8550억 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선물시장에서도 1만 8205계약(1조 4115억 원)을 팔아 치우며 사상 최대치를 새로 썼다. 기관은 코스피에서는 261억 원을 순매수했으나 코스닥시장에서는 2839억 원을 순매도했다.
전일까지만 해도 국내 증시는 미 정부가 SVB 사태에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며 급락 위기를 넘기는 듯했다. 그러나 일부 은행의 연쇄 파산 우려와 예금 인출 등의 후폭풍이 거세게 일며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날 발표가 예정된 미국 2월 소비자물가(CPI) 지표도 증시 변동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CPI가 1월과 비슷한 수준을 이어나갈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빚을 내 투자한 ‘빚투족’은 증권사에 담보로 맡긴 주식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담보 부족에 직면해 증시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날 코스닥시장의 하락세가 더 가팔랐던 것도 반대매매 주식 청산으로 인한 대규모 물량 출회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코스닥의 특성상 개인 수급 충격이 더욱 두드러진 것이다. 이달 13일 기준 반대매매 금액은 301억 원으로 올 들어 가장 큰 금액을 기록했다. 같은 날 코스피와 코스닥의 합산 신용잔액은 18조 원에 육박했다. 이는 지난해 월간으로 10% 이상 급락세를 기록했던 6월, 9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김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수가 추가적으로 하락한다면 담보비율을 채우기 위해 증권가에서 청산하는 물량이 나올 수 있다”면서도 “CPI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온다면 기술적 반등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시장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금 시장은 이례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다. 투자자들이 위험 자산을 팔아 치우고 안전 자산인 금을 피난처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날 KRX금 가격은 전일보다 2.39% 오르며 8만 원을 기록했다. KRX 금 가격이 8만 원을 웃돈 것은 2020년 7월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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