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국산 항만 크레인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선다. 미국 정부가 최근 중국 상하이전화중공업(ZPMC)의 대형 크레인이 ‘스파이 장비’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이미 중국산(478기, 2022년 말 기준) 항만 크레인은 국산(389기)을 압도할 만큼 국내 시장을 장악한 상태다.
1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이르면 이달 국가정보원 등 관계기관과 중국산 항만 크레인 전수조사에 돌입한다. 해수부는 전국 항만에 설치된 중국산 대형 크레인의 터미널운영시스템(TOS) 등 소프트웨어(SW)를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크레인 보안의 핵심은 하드웨어(HW)가 아닌 항만 운영 시스템 같은 소프트웨어”라며 “가능한 빨리 관계기관과 협의해 (전수조사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중국산 크레인 전수조사에 나선 것은 미 정부가 최근 대책 마련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자국 항구에 설치된 중국산 크레인이 첨단 센서를 통해 군수물자 운송 정보 등 군사 기밀을 수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우려하는 업체는 글로벌 크레인 시장 70%를 차지한 중국 국영기업 ZPMC다. 미국 내 항만 크레인 가운데 약 80%는 ZPMC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ZPMC 측은 2017년 인터뷰를 통해 중국 상하이 본사에서 자사 크레인을 모두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해수부에 따르면 국내 항만 크레인 876기 중 54.6%(478기)는 중국산으로 집계됐다. 미 정부가 ‘트로이 목마’에 비유한 ZPMC 제품만 427기로 두산중공업·현대중공업 등 국내 기업이 생산한 크레인(389기)을 모두 합친 것보다 38기 더 많다. 국내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에 설치된 ZPMC 크레인은 298기로 의존도가 55%가 넘었다. 주한 미군이 군수물자를 들여오는 평택·당진항에도 ZPMC 크레인 21기가 설치돼 있었다.
정부는 전수조사를 계기로 항만 크레인 국산화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국내 크레인 업체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글로벌 공급자 지위에 있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급락했다. 실제 한국의 글로벌 안벽크레인(QC) 시장점유율은 2003년 8.1%에서 2008년 3.9%로 주저앉은 후 2013년부터는 0%대로 존재감조차 미미하다. 정부 관계자는 “공급망 이슈로 크레인 유지·보수가 적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항만이 멈출 수 있다”며 “경제안보적 관점에서도 크레인 국산화를 추진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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