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한일정상회담 2차 만찬이 진행된 도쿄 긴자의 한 경양식집이 주목을 받은 가운데 대형 유통·명품 채널들과 어우러져 오랜 시간 업(業)을 이어 온 노포(老鋪)들의 저력이 눈길을 끌고 있다.
19일 긴자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한일 정상의 2차 만찬이 열린 식당은 1895년 창업해 128년째 운영 중인 ‘렌가테이’로 포크커틀릿에 양배추를 곁들인 일본식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발상지로 알려진 곳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일대에 수십 년, 몇 대에 걸쳐 가게를 지켜온 렌가테이 같은 노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맥줏집부터 일본 최초의 단팥빵을 선보인 빵집, 1911년 문을 연 현존하는 일본의 최고령 카페 등 존재 자체로 긴자의 역사가 된 가게들이다.
긴자의 작은 점포들이 유통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비결 중 하나가 ‘노포 연대’다. 현재 긴자에는 노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백점회’라는 단체가 있다. 1954년 생긴 이 단체는 당시 신주쿠와 시부야의 부상으로 ‘긴자 쇠퇴론’이 대두하자 거리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상점 100곳이 뜻을 모아 만든 모임이다. 백점회는 1955년 4월부터 ‘긴자백점(銀座百点)’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는데 최근 3월까지 820호를 찍었다. 유명 인사와 상권 관계자들이 필진·대담자로 참여해 수준 높은 정보를 전달하고, 그 안에 긴자와 상점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내 인기가 많다. 긴자백점의 11대 편집장인 타나베 유코 씨는 2021년 7월 800호 발행 당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긴자 거리를 걷지는 못해도 이 잡지는 읽고 싶다’며 정기 구독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팬데믹을 거치며 이 연대는 대기업까지 힘을 합친 ‘물건 연결(모노 쓰나기) 프로젝트’로 한 단계 진화했다. 방문객이 급감한 2020년 152년간 영업해 온 한 도시락 가게가 폐업에 내몰리자 상인들은 공동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만들어 상권 부흥에 나섰다. 자기 상품을 홍보하는 게시물 끝에 다음 상점을 지목하고 ‘배턴’처럼 자사 홍보 상품을 다음 주자에게 보내는 릴레이 캠페인을 전개한 것이다. 당시 17번째 주자로 나선 점포가 이번 정상회담 1차 만찬 장소였던 스키야키 전문점 ‘요시자와’다. 상점들의 호응과 소비자들의 응원에 4개월 만에 참여 점포가 100곳을 돌파했고 당시 이를 기념해 유니클로·마쓰야 백화점 긴자점은 특별 의류 제작 이벤트·전시회 등의 행사를 진행했다.
업종도 규모도 역사도 다른 점포들의 ‘함께 살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니클로는 2021년 긴자에 12층짜리 건물을 리뉴얼해 ‘글로벌 플래그십 매장’을 선보이면서 긴자 노포들의 로고를 입힌 셔츠와 에코백,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긴자 스페셜 컬래버레이션’ 코너를 만들었는데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내국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판매 없이 긴자 유니클로 점포에서만 살 수 있어 고객의 긴자 방문을 유도하는 기능도 한다. 다수의 소비자도 “번거롭지만 희소성 있고, 대기업과 지역 상점들이 조화를 이루는 게 보기 좋다”며 좋은 반응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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