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연초만 해도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을 신흥국 중에서 가장 많이 담았다. 지난해 하락 폭이 커 ‘가성비’가 좋다는 평가 덕분이다. 하지만 이달 들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 등 위기 조짐이 확산하자 한국 시장에 등을 돌리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금리 차이로 외국인의 추가 이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투자가는 이달 국내 증시에서 총 1조 472억 원을 팔아치웠다. 특히 SVB 파산 사태가 발생한 10일 이후 9705억 원(92.6%)을 내던졌다. 이달 전체 기준으로는 코스피(6796억 원) 매도액이 코스닥(3676억 원)의 2배에 육박한다. 10일 이후로는 코스피(8744억 원)에서 대부분을 팔았다.
국가별로도 단기 투자자 성격의 외국인뿐 아니라 비교적 장기 투자자로 분류되는 국가의 투자자도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 기준으로 영국 투자자들이 1조 930억 원을 순매도해 가장 많은 금액을 팔고 나갔다. 영국은 코스닥에서도 2950억 원 순매도로 1위였다. 영국은 단기성 투자금으로 분류된다. 국내 증시에서 2차전지나 로봇 등 연초 급등한 종목에 대한 투자금 회수로 분석된다.
코스피 기준 장기 투자자로 분류되는 미국(순매도 8430억 원)이나 홍콩(1908억 원) 자금도 국내 증시를 털었다. 이밖에 호주(1658억 원), 네덜란드(792억 원) 등이 순매도 상위 5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코스닥 역시 스위스(788억 원), 노르웨이(770억 원) 등 유럽권 외에도 미국(681억 원), 케이맨제도(377억 원) 순이었다. 1월과 2월 국내 증시에서 7조 500억 원을 사들이며 주요 증권사들의 ‘상저하고’ 전망을 머쓱하게 만들었던 기세와는 대조적이다.
증시뿐 아니라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 이탈 조짐은 감지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달 초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채권 자금은 지난해 12월 27억 3000만 달러 순유출을 기록했다. 1월 유출 규모는 52억 9000만 달러까지 확대됐다. 1월 유출액은 한은이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99년 4월 이후 역대 최대다. 2월 들어 순유출 규모가 둔화됐다고는 하지만 불안한 시장 상황이 이어지면서 3월 역시 분위기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SVB 파산이나 CS 사태가 일단락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 증시의 문을 다시 두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달 들어 국내 증시 주간 기준 외국인 투자금 순매도액은 3월 둘째 주 1조 1888억 원에서 셋째 주 5756억 원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이번 주(20~23일)는 976억 원 순매수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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