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첩약 처방 일수 축소 논의를 두고 한의계와 보험 업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교통사고 경상 환자의 첩약 1회 최대 처방 일수를 현행 10일에서 5일로 줄이는 내용이 논의되는 국토교통부 분쟁심의위원회가 이달 30일 진행되는 가운데 한의계는 처방 일수 변경은 피해자의 진료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일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보험 업계는 그동안 한의계가 자동차보험으로 경제적 이익을 챙겼을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27일 손해보험협회는 이례적으로 ‘한방 진료수가 개선에 대한 손해보험업계 성명서’를 내고 “이번 첩약 처방 일수 조정은 현재 1회 10일 처방으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환자의 상태에 따라 1회에 5일분으로 처방하자는 것”이라며 “필요하면 5일씩 추가 처방이 가능해 진료권이 제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비자단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첩약을 받아든 환자 4명 중 3명은 첩약을 전부 복용하지 않고 버리거나 방치하고 있어 과도한 첩약 처방으로 막대한 자원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한방진료비는 매년 급증해 총 진료비 대비 비중이 2016년 27.7%에서 2022년 58.2%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양방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2.3%에서 41.8%로 줄었다. 특히 자동차보험의 한약 첩약 진료비는 2016년 1237억 원에서 2022년 2805억 원으로 6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대해 손해보험협회는 “(무조건적인 1회 10일 처방으로 인한 첩약 진료비 폭증은) 자동차보험료 인상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사실상 전 국민에게 해당하는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으로 귀결된다”며 “첩약의 과도한 처방과 남용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한의계에 대한 불신만 증가하는 만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의계 입장은 다르다. 24일 대한한의사협회는 “교통사고 환자의 첩약 처방 일수 변경에 대해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자동차보험 한의 진료수가를 의학적 판단은 고려하지 않고 경제 논리로만 멋대로 재단하려는 안하무인 국토부의 행태에 깊은 우려와 함께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한의사협회는 첩약 처방 일수 변경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한의계 총궐기 투쟁에 나서겠다고 예고했으며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은 25일 국토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삭발 이후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아울러 한의계는 처방 일수 조정이 논의조차 되지 않은 내용이며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30일 분쟁심의회 개최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손해보험협회는 “전문가그룹 회의 등 논의를 거쳐 이미 2013년 11월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에서 합의된 사항이지만 한의계의 일방적인 반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손보협에 따르면 첩약 1회 최대 처방일수 조정과 관련해 2020~2021년 분쟁심의회 안건으로 논의됐고, 2021~2022년 한의학 전문기관을 통한 연구용역이 진행됐다. 또 지난해부터는 국토부 주관 한의·보험 업계 간담회를 통해 지속해서 논의됐다.
손보협회는 “한방 분야 진료수가 기준 개선은 보험 업계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해 2021년 9월 이미 발표한 범정부 종합 대책의 일환”이라며 “정부는 한의계의 부당한 협박과 불합리한 요구에 굴하지 말고 국민을 위한 제도 개선 약속을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