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대LNG해운의 해외 매각을 막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국내 유일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송 전문 선사인 현대LNG해운이 해외에 팔릴 경우 에너지 공급망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7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현대LNG해운의 해외 매각에 대비해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HMM 등 국내 기업이 현대LNG해운을 인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정부 관계자는 “(현대LNG해운의) 해외 매각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며 “아직 입찰 초기 단계인 만큼 매각 동향을 예의 주시하며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LNG해운은 HMM의 LNG전용사업부로 출발한 국내 최대 LNG 수송 전문 선사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IMM프라이빗에쿼티(PE)와 IMM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앞서 IMM 측은 최근 현대LNG해운 예비 입찰을 거쳐 미국·영국·덴마크 등 해외 기업 5곳을 적격인수후보(쇼트리스트)로 압축했다. 본입찰은 이르면 다음 달에 실시된다. 매각가는 6000억~7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현대LNG해운의 경제·안보적 중요성이 작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LNG해운이 국내에 들여오는 LNG 물량은 연간 500만~550만 톤 규모로 지난해 전체 도입량(4639만 5000톤)의 10%가 넘는다. 또 현대LNG해운은 한국가스공사에서 가장 많은 도입 물량을 맡고 있다. 현대LNG해운을 해외에 매각할 경우 LNG 수급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LNG 수송 선사 확보는 공급망 안정과 직결된다”며 “정부가 에너지 안보 관점에서 해외 매각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 매각시 공급망 타격 우려
정부가 현대LNG해운 매각에 따른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국내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망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현대LNG해운은 국내 유일의 LNG 수송 전문 국적 선사로 국내 전체 LNG 도입량의 10~15%를 맡고 있다. 본래 HMM(옛 현대상선)은 1990년 국내 최초 LNG 운항 선사로 선정돼 LNG전용사업부로 출발했다. 하지만 2014년 경영난을 겪던 HMM이 LNG사업부를 매물로 내놓자 IMM프라이빗에쿼티(PE)와 IMM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 지분 100%를 인수했다.
정부의 고심이 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LNG해운이 국내 에너지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크지만 정부가 직접적으로 매각 작업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제도적 근거는 사실상 없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현대LNG해운) 해외 매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예상되는 여파를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며 “단 법적으로 매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물론 IMM도 현대LNG해운의 경제안보적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당초 IMM은 2021년 현대LNG해운 매각을 추진할 당시 국내 기업을 중심으로 매수자를 찾았다. 국내 유일 LNG 수송 전문 국적 선사라는 상징성 등을 감안해서다. 특히 HMM과는 지난해 인수 계약 체결 직전까지 협상이 진행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HMM의 최대주주인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본격 추진하고 있는 HMM 매각 작업이 현대LNG해운 인수를 위한 딜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문제는 글로벌 LNG 수요가 증가하며 전문 수송 선사의 가치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유럽 주요국이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기점으로 수급이 불안정해진 러시아산 파이프라인가스(PNG) 대신 LNG로 눈길을 돌린 탓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LNG 수요 및 교역량이 2020년 356MT(메트릭톤·중량 단위)에서 2030년 510MT로 연평균 3.7%씩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LNG해운 매출은 2021년 1970억 원에서 지난해 3981억 원으로, 영업이익도 207억 원에서 485억 원으로 두 배 이상 커졌다.
국영화 필요성도 제기
탈(脫)탄소 기조도 LNG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LNG는 화력발전 연료 중 탄소 배출량이 비교적 적어 2050 탄소 중립 달성 과정에 필수적인 에너지로 꼽힌다. 정부가 올 초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LNG발전 설비용량을 올해 43.5GW(기가와트)에서 2026년 52.4GW, 2030년 58.6GW, 2036년 64.6GW로 늘리겠다는 구상을 담은 것도 그래서다. 반면 석탄발전 설비용량은 올해 40.2GW에서 2036년 27.1GW로 줄어든다.
이에 정부는 정책금융 투입도 검토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현대LNG해운을 인수할 수 있도록 산은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지원 사격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유력한 인수 후보자는 현대LNG해운 전신인 HMM이다. HMM은 과거 LNG전용사업부 매각 당시 맺은 경업금지(경쟁업종 금지) 조항으로 2030년까지 LNG 수송업에 진출할 수 없지만 현대LNG해운을 인수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현대LNG해운) 협상이 무산됐지만 HMM도 아직 인수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관건은 HMM 매각이다. 산은과 해진공은 최근 삼성증권을 HMM 매각주관사로 낙점하고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산은과 해진공 입장에서 HMM 매각 작업이 이제 막 궤도에 오른 만큼 향후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려운 현대LNG해운 인수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가스공사를 통해 현대LNG해운을 국영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시장 논리만 따르면 국적 선사의 해외 유출이 잇따라 에너지 안보를 놓칠 수도 있다”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가스공사가 현대LNG해운을 흡수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