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9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내수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내수가 둔화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민간 소비는 직전 분기 대비 0.4% 하락했다. 지난해 1분기 -0.5%에서 2분기 2.9%로 상승 전환한 후 불과 2개 분기 만에 하락세로 돌아선 셈이다.
여행수지도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올 1월 여행수지는 14억 9000만 달러 적자로 1년 전(-5억 5000만 달러)보다 적자 폭이 3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 완화로 해외여행자가 급증한 탓이다. 경상수지 적자 규모도 45억 2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고금리 장기화 영향 등으로 (내수) 회복세 둔화가 우려된다”며 “특히 관광 관련 서비스업 등 코로나19 피해가 컸던 소상공인과 지역 골목상권 등 취약 부분의 경우 여전히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소비 심리와 경상수지를 끌어올리려면 올해 본격 재개되는 국내 관광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가 대책 초점을 ‘관광업 활성화’에 맞춘 것도 그래서다.
특히 외국인 유인책을 늘려 올해 방한 관광객 1000만 명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정부 목표다. 이형일 기재부 차관보는 “(이번 대책은) 외국인 방한 관광 활성화에 가장 역점을 뒀다”며 “국내 입국 및 이동 편의를 제고하고 K콘텐츠 확충 등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무비자 환승 입국 외에도 각종 비자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우선 다음 달부터 내년 말까지 전자여행허가제(K-ETA) 한시 면제를 추진할 방침이다. 일본·대만·홍콩·미국·영국 등 입국자 수는 많지만 입국 거부율이 낮은 22개국이 대상이다. 또 정부는 K-ETA 유효기간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접근성 확대를 위해 중국어·프랑스어 등 다국어 서비스를 늘리기로 했다.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 등 3개국을 대상으로 단체전자비자 발급 요건도 완화한다. 기업이 자사 직원의 여행비를 부담하는 인센티브 관광과 5인 이상 수학여행으로 제한됐던 단체전자비자 발급 대상을 3인 이상 단체관광객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외국인 국내 체류를 유도하기 위해 ‘디지털노마드비자(워케이션비자)’와 ‘K컬처연수비자’도 신설한다. 디지털노마드비자를 활용하면 고소득·고자산 외국인이 국내 소득 활동이 없는 경우에도 1~2년 동안 국내에 거주할 수 있다. K컬처연수비자는 K팝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국내 교육기관 연수 등을 허용하는 비자다.
항공편도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달 기준 주 63회에 그친 한중 노선을 올 9월까지 주 954회로 증편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주 1100회)의 86.7% 수준이다. 한일 노선은 지난달 기준 주 863회에서 올 9월까지 2019년(주 1091회)의 92% 수준인 주 1004회로 늘릴 방침이다. 같은 기간 한·동남아 노선은 주 1086회에서 주 1115회로 증편하기로 했다. 이 차관보는 “특히 일본은 지방 노선 재개와 관련해 당국 간 협의를 통해 조기에 성과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할당관세 품목 확대 등 생계비 부담 완화를 위한 방안도 눈에 띈다. 할당관세는 물가·수급 안정을 위해 특정 수입품의 관세율을 한시적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정부는 올 5월부터 6월까지 닭고기·무·대파 등 수급 불안 품목에 할당관세 조치를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 대책의 효과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정부가 건전 재정 기조와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수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다 보니 국내 소비자 구매력 강화 등 근본적 해결책은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연계하겠다며 제시한 국내 ‘메가 이벤트’ 50여 개도 전국 면세점에서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코리아듀티프리페스타’ 등 2~3개를 제외하면 이미 예정된 축제를 짜깁기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 차관보는 “내수를 전반적으로 끌어올리자는 차원의 대책은 아니다”라며 “관광·여행 등 맞춤형으로 관련 사업을 넓힐 수 있는 부분을 찾은 것”이라고 밝혔다.
비자 제도 개선 효과 역시 미지수다. 정부도 아직 환승 무비자 제도 복원과 K-ETA 한시 면제 등 외국인 유인책에 따른 효과를 가늠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 측은 “향후 항공편 회복세와 단체관광객 수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해 현재는 (효과) 추산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