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세계적 교육학자인 켄 로빈슨이 세계적인 강연 플랫폼 TED에서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개선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좋아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틀린 모델이라 개선해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했다.
로빈슨이 설파한 근본적 혁신은 무엇일까. 대학이 더 이상 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학습하는 곳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대학에서는 교수가 주체이지만 로빈슨이 그렸던 대학에서는 학생이 주체가 된다. 가히 발상의 혁명적 전환이다. 대학의 존재 이유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연구를 잘하는 대학이 최고의 대학이라고 생각해왔다. 보통 세계 대학 평가 기관들의 평가 비중을 보면 교수의 연구 역량이 높다. 대부분의 교수 업적 평가에서 정량화가 쉬운 연구 분야 업적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다 보니 우리 모두 대학의 본질은 연구에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인재를 길러내는 일이 본질이라고 보고 뛰어난 강의 등 교육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교수는 업적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책임 강의 시간 수와 학기 말 학생 강의 평가를 통해 한다고는 하지만 실상 변별력이 없다. 반면 연구 업적은 정량화가 가능해 논문을 많이 쓰는 사람은 논문 수에 비례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교수 입장에서 시간을 어디에 투입하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유리한지 보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결과 교육, 특히 학부 교육에 대한 교수의 관심과 열정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이 시점에서 기존의 교육 방식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20년 만에 세계적인 공과대학으로 떠오른 미국의 한 대학을 주목해본다. 바로 올린공대다. 이 대학은 로빈슨이 바라던 학생의 학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교수가 이론 위주로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지식을 실제 사례에 적용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한다. 학생이 과학적 원리를 학습한 뒤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학생 스스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한다. 이를 통해 졸업 후 어떤 문제에 당면했을 때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도록 했다. 미국 학생들이 보통 매사추세츠공대(MIT)·스탠퍼드대·올린공대 등 3곳의 입학허가서를 받으면 의외로 올린공대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존 방식으로 교육받은 사람과 새로운 학습 방식으로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운 사람 중 누가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인가. 정답은 명확하다. 이제는 대학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때다. 기존 대학의 교육 시스템을 올린공대처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필자가 몸담은 한국에너지공대(Kentech)를 포함해 적지 않은 신생 대학들은 학생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관성이 큰 거대 조직처럼 변화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제 기존 연구 중심 대학과 달리 학생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학생 중심의 학습을 교육 혁신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대학이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학생의 성공이 바로 대학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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