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인 김정호(1804~1866 추정)는 ‘대동여지도’를 만들기에 앞서 ‘동여도’를 제작했다. ‘동여도’는 약 1만 8000여 개에 달하는 지명과 함께 조선 시대의 교통로와 군사시설 같은 지리정보가 생생하게 담긴 채색 필사본 지도다. 지도 자체만 22첩이고, 영토의 역사와 지도제작법 등을 적은 목록 1첩이 추가로 붙어있다. 이렇게 정리한 내용을 기반으로 김정호는 1861년 22첩의 목판본 병풍식 지도첩 ‘대동여지도’를 처음 제작·간행했고, 1864년에 재간했다. 붓으로 적은 ‘동여도’와 달리 ‘대동여지도’는 목판에 새겨야 하는 한계 때문에 많은 지명들과 지도사용법 등이 생략됐다.
목판본 ‘대동여지도’ 형식에 ‘동여도’ 내용 상당부분을 필사로 더한 희귀본 ‘대동여지도’가 발견돼 국내로 환수됐다. 문화재청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대동여지도’를 언론에 공개했다. 기존에 알려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관련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목판과 성신여대박물관·서울대학교·서울역사박물관 소장의 지도 3점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번에 환수된 지도는 ‘동여도’ 내용이 필사로 적혀있어 이들과는 또 다른 가치를 지닌다. 이날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고지도 전문의 김기혁 부산대 명예교수는 “동여도의 1만8000여 지명 중에서 1만1000개 지명이 필사로 적혀있다”면서 “국내외 ‘대동여지도’가 35점 정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왔고, 최근 이건희 회장 기증품 중 2점이 추가 확인된 것에 이어 이 환수유물까지 총 38점이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환수된 지도는 목판본 ‘대동여지도’의 한계를 ‘동여도’ 내용을 필사해 보완한 사례이며 대동여지도가 두루 보급되면서 변용된 형태로 추정된다”면서 “국내에 ‘대동여지도’ 갑자본(1864년작)와 ‘동여도’가 희소하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더욱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일본의 소장자가 이 지도를 팔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유물의 존재를 확인했다. 면밀한 자료 조사와 검토가 진행됐고, 이달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대동여지도 매입비용은 정부혁신 사업의 복권기금으로 추진됐다.
공개된 환수유물 ‘대동여지도’는 접었을 때 책 한 권 크기지만 22첩을 펼치면 남북 약 7m, 동서 약 4m의 초대형 지도가 된다. 보물로 지정된 기존 대동여지도가 22첩인 것과 달리, 이 유물은 ‘동여도’처럼 목록 1첩이 더해져 총 23첩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를 남북 120리 간격으로 구분해 22층을 만들고, 각 층을 병풍식으로 접히게 한 것은 ‘동여도’와 ‘대동여지도’가 같다.
주목할 점은 더 상세한 지리정보다. 예를 들어 백두산 일대의 경우, 이 유물은 목판본에 없는 조선과 청나라 국경 표지석인 ‘백두산정계비’와 군사시설 간의 거리가 붓글씨로 적혀있다. 울릉도 부분에는 기존 ‘대동여지도’에는 적히지 않은 울릉도행 배의 출발지 등의 내용이 필사로 적혀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