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다국적 승강기 업체 이자 현대엘리베이(017800)터 2대 주주인 쉰들러 그룹과의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면서 수천억원대의 배상금을 물어주게 되자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7% 가까이 급등하는 등 시장이 동요했다. 현 회장이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배당을 늘리는 등 주주 친화적인 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대주주가 회사와 주주의 손해 여부는 고려하지 않고 경영권 방어에만 급급했다가 사상 최대 규모의 배상금을 물게 된 것"라며 "대기업 오너 및 경영진들이 반면교사 삼을 만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30일 쉰들러가 현 회장과 한상호 전 현대엘리베이터 대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이 2014년에 제기된 점을 감안하면 이자를 포함한 총 배상액은 2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주대표 소송 사상 최대 배상금이다. 한 전 대표도 배상액 가운데 190억원을 책임져야 한다.
최대주주인 현 회장에 대한 수천억원대 배상 판결 소식이 알려지자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7% 가까이 급등했다. 지난 3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직전 거래일 보다 6.73% 오른 3만1700원에 마감했다. 현 회장이 가진 현대엘리베이터 지분(7.8%) 가치가 1000억원에 불과한 만큼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배당을 늘리고 기업가치를 올리는 등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이 소송은 2014년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주주인 쉰들러가 현 회장 등이 현대상선에 대한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맺은 파생금융상품 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7000억원 가까운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11년 계열사인 현대상선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우려되자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5개 금융사에 우호지분 매입을 대가로 연 5.4%~7.5% 수익을 보장해주는 파생상품을 계약했다. 현대상선 주가가 오르면 현대엘리베이터와 계약 상대방 금융사들이 이익을 나눠 갖고, 주가가 내려가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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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체결 후 현대상선 주가가 하락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가 막대한 손실금을 물게 되자 2대주주인 쉰들러는 "현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이 현대엘리베이터에 수천억원대 손해를 입혔다"며 7000억원대 규모의 주주대표 소송을 냈다. 주주대표 소송은 주주가 회사를 대표해 회사에 손실을 입힌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이다. 현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이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해 금융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의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다는 게 쉰들러 측 주장이었다.
1심은 파생상품 계약 체결이 적절한 수단이었다며 쉰들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현 회장 등이 17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현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 이사들이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파생상품 계약 체결을 의결하는 것을 막지 않는 등 감시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밝혔다. 다만 해운업 불황에 따른 주가 하락을 예상하기 어려웠던 점 등을 고려해 현 회장의 배상 책임을 전체 손해로 인정된 금액의 약 50%로 제한했다.
대법원은 현 회장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심 판결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제3자가 계열 회사 주식을 얻게 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이사는 소속 회사 입장에서 여러 사항을 검토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며 “계열회사 주가 변동에 따른 손실 가능성 등을 검토하고 파생 상품 계약 규모나 내용을 적절하게 조정해 회사가 부담하는 비용이나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다. 지난해 매출은 2조1293억원으로 전년 대비 7.9% 늘었고, 영업이익은 430억원으로 66.7% 줄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 회장 등 최대주주 및 특수 관계인이 지분 26.5%를 소유하고 있으며 2대주주인 쉰들러의 보유지분은 15.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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