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금리 상승으로 인수금융의 부담이 커지자 얼어붙었던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올 들어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여전해 주요 대기업과 사모펀드(PEF)들이 협업하며 위험 분산에 나선 것이 최근 트렌드로 주목된다. 2차전지 소재 기업에 한국과 일본의 대기업이 PEF와 연합해 투자하는 이례적인 사례도 나왔다.
서울경제신문 시그널이 집계한 M&A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 1분기 주식매매계약(SPA)을 발표한 거래는 35건(5조 7211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3조 3690억 원) 대비 2조 3690억 원 증가했다. 대기업과 PEF가 손잡고 신사업에 공동 투자하거나 대기업이 PEF의 투자를 유치하는 양측의 협업 사례가 잇따르면서 거래액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JKL파트너스·도요타쓰우쇼가 올 초 코스피 상장사인 삼아알미늄(006110)에 1253억 원을 공동 투자한 것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도요타쓰우쇼는 일본 자동차 업계 1위인 도요타 계열의 종합 상사다. 이번 투자는 미래 산업을 향한 국내 PEF와 한일 대기업 간 협업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3사의 공동 투자로 삼아알미늄은 향후 배터리 회사들에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기업 가치를 키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SK(034730)그룹도 SK E&S와 SK쉴더스 등 2개 계열사가 PEF로부터 2조 7583억 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침체돼 있던 투자 업계에 온기를 불어 넣었다. 스웨덴 사모펀드인 EQT파트너스가 2조 원 규모의 SK쉴더스 지분 인수 계약을 완료했고 글로벌 3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7350억 원에 SK E&S 신주 인수를 마무리했다.
M&A 시장에서 좀처럼 눈에 띄는 거래가 없던 현대백화점(069960)그룹은 현대렌탈케어를 사모펀드인 시에라인베스트먼트에 1370억 원에 매각 완료하며 현금을 챙겼다. 시에라인베스트먼트는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주도해 지난해 설립된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로 현대백화점과 깜짝 거래를 성사시켜며 업계에 데뷔했다.
롯데케미칼(011170)은 파키스탄 자회사를 현지 회사인 ‘럭키 코어 인더스트리’로부터 1955억 원을 받고 매각했다. 롯데케미칼은 2009년 해당 회사 지분 인수에 147억 원을 투입했는데 이번 매각으로 13배에 달하는 자금을 회수했다.
대기업과 사모펀드 간 지분 투자 거래는 최근 증가세다. 특히 SK그룹은 지난해 한앤컴퍼니에 매각한 SKC 필름사업부(1조 6000억 원)를 비롯해 2021년 IMM크레딧솔루션의 SK엔무브 투자(1조 1000억 원) 등 빅딜을 활발히 이어왔다. SK에코플랜트 역시 지난해 싱가포르 전기·전자 폐기물(E-waste) 기업 테스를 1조 2000억 원에 나비스캐피탈파트너스로부터 인수했다.
CJ(001040)는 PEF로부터 활발히 투자금을 유치한 대기업으로 꼽힌다. 2019년 CJ푸드빌은 자회사 투썸플레이스 지분 45%를 앵커에쿼티파트너스에 2025억 원을 받고 매각한 뒤 이듬해 남은 지분 15%도 넘기며 경영에서 손을 뗐다. CJ올리브영도 글랜우드 PE에 지분 23%를 4100억 원에 매각하며 신사업 투자의 실탄을 확보한 바 있다. 롯데는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000400)을 2019년 각각 MBK파트너스와 JKL파트너스에 1조 3800억 원, 3700억 원에 매각한 바 있으며 지난해 IMM프라이빗에쿼티와 함께 한샘 경영권을 공동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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