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관련 법이 14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보험 업계에서는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이번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2일 보험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와 관련한 6개 보험업 법 개정안이 발의, 계류해 있다. 2년 전인 2020년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고용진 민주당 의원에 이어 2021년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과 정청래 민주당 의원, 지난해 배진교 정의당 의원 등이 잇따라 개정안을 발의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 보험에 대한 보험금 청구 절차의 개선을 권고한 뒤 관련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14년째 국회 정무위 소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들어 열린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 소위에서도 관련 법 논의는 제외됐다.
보험 업계가 실손 보험 청구 전산화를 꾸준히 요구하는 것은 소비자와 보험사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소비자들이 실손 보험 청구 과정에서의 불편함 등을 덜어내 청구 자체를 포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실손 의료보험 지속성 강화와 역할 정립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실손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유로 서류 발급을 위한 병원 방문이 귀찮고(44%), 청구 금액이 소액(73.3%)이라는 점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아울러 보험사들은 청구 시 사용되는 종이 문서 등의 사용을 줄이고 관련 서류 보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도 청구 전산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이유로 들고 있다. 또 소액 보험금 청구가 지금보다 늘어나면서 보험사들의 보험금 지급액이 늘어날 수 있지만 실손 보험 손해율을 높이는 주범인 비급여 진료비를 관리할 수 있다는 점도 보험사들이 적극적으로 이를 제도화하려는 이유다.
현재도 일부 보험사와 대형 병원 간 전산화가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보험 업계에서는 모든 병원과 보험회사가 참여해야 제도 개선의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팩스, 스마트폰 앱을 통한 청구 등 다양한 시도가 있지만 종이 문서를 전제로 한 제도 개선으로 효과가 미미하다”며 “소비자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의료비 증명 서류를 전산으로 제출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실제 해당 전산 입력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의료계는 개인의 의료 정보가 쉽게 유출될 수 있고 작은 병원이나 의원은 시스템 구축이 부담된다는 이유를 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위탁을 통한 제도 도입은 비급여 진료 정보를 심평원에서 접근할 수 있게 돼 민간 의료기관의 진료 자율성이 빼앗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가 심평원을 대신해 보험개발원을 중계 기관으로 삼도록 했지만 논의에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보험 업계에서는 올 상반기까지 국회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면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실손 보험 청구 전산화 도입은 물 건너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당장 올 하반기부터는 정치권이 내년 총선 준비에 집중할 텐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관심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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