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에 맞는 보험 상품·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데이터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지만 보험사들의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보험사들의 건강보험공단의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이 불가능한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결국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2일 보험 업계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보험사 대상 데이터 개방을 거절한 채 뚜렷한 사유 없이 1년 이상 심의를 유보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2021년 9월 보험사들의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 요구를 거절했고 이후 보험사들이 재신청했지만 2022년 1월 건보공단의 심의가 유보돼 현재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건보공단 내부 규정에 따르면 심의 신청이 있는 날부터 25일 이내(근무일 기준)에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회신해야 하지만 무기한으로 심의를 보류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는 2021년 7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 승인은 획득했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양질의 보건의료 데이터 3조 4000억 건을 보유하고 있으며 심평원 데이터는 이보다 적은 3조 건 수준이다. 건보공단 데이터가 심평원보다 더 많고 심평원에 없는 자료도 건보공단이 보유하고 있어 보험사들은 심평원의 데이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건보공단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심의하고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미승인할 경우 관련 근거 및 사유를 제시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영리 목적을 포함해 공공기관의 공공 데이터 개방 의무를 규정한 공공데이터법이 제정됐고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보험사의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이 제한적인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의 법적 근거도 명확한 상태다. 법제처는 보험사가 가명 처리된 질병 정보를 제공받는 경우 개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유권 해석을 내렸다.
보험사들이 풍부한 공공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경우 다양한 효과가 기대된다. 우선 보험사는 국민 의료 이용 트렌드를 반영해 유병자 보험 및 건강 증진 보험 상품 등 보험의 보장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 유병자·고령자 등 취약 계층을 위한 혁신 상품 개발·활성화를 통해 보장 사각지대가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당뇨 합병증 보장 상품, 고령자 대상 치매 장기 요양 관련 상품, 뇌혈관 질환자 관련 연구·분석을 통한 보장 상품 등 다양한 상품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위험 및 신의료기술에 대한 보장 상품 개발·활성화를 통해 소비자 니즈에도 부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난임 검사·치료, 체내수정 비용 보장 등 여성 전용 신상품 및 신항암 치료 수술비를 보장하는 신상품 개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품의 다양화 촉진 및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되고 공보험의 보조적 역할로서 민간 보험의 사회안전망 역할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사의 공공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분석은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의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으며 디지털 헬스케어 등 플랫폼 서비스 활성화로도 이어져 국민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령 당뇨 전 단계 40대 남성을 대상으로 식단을 제공하거나 운동 지도 등 생활 습관 개선, 당뇨 수치 관리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 아울러 암 환자의 암 완치 및 극복을 지원하는 운동, 영양, 복약 지도 등 맞춤형 사후 관리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 분야 연구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보험사들이 연구 결과를 외부에 공개할 예정인 만큼 학술적·의료적·정책적 연구 등에 활용될 수 있다.
보험 업계는 보건복지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심평원·건보공단, 보험 업계, 소비자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보험업권 빅데이터 협의회’를 구성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복지부 등의 호응은 없는 상태다. 보험 업권에서는 해당 협의회 구성을 통해 데이터 관리 체계 점검, 데이터 활용 우수 사례 발표, 제도 개선 사항 발굴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데이터의 안전한 이용을 위한 관리 체계 구축, 모델 개발 사례 공유·발표 등 신뢰도 높은 공공 데이터 이용 문화를 조성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이터의 활용은 세계적·시대적 흐름으로 데이터를 봉쇄하고 활용을 제한하기보다는 안전한 이용 생태계 조성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보건의료 데이터의 활용이 국민 삶의 보배가 될 수 있도록 복지부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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