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잠재적 ‘스파이 장비’로 지목한 중국산 항만 크레인이 국내 시장에서 퇴출 수순을 밟는다. 항만공사들이 잇따라 신규 크레인을 국내 기업에만 발주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국내 항만 시장을 잠식한 중국산 크레인에 대한 보안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13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인천항만공사는 최근 항만 운영사 선정 시 국산 크레인 도입 계획이 있는 업체를 우대하기로 결정했다. 운영사 선정 과정에서 국산 크레인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신청 기업에 가점을 주는 방식이다. 인천항만공사는 올 상반기 내 모집할 입주 기업부터 이 같은 방침을 적용하게 된다. 인천항만공사 관계자는 “통상 항만 운영사 선정에는 복수 업체가 신청해 미세한 점수 차로 당락이 결정된다”며 “가점을 통해 충분히 국산 크레인 도입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항만공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부산항만공사는 올 하반기 준공 예정인 2-5단계 컨테이너 부두에 설치할 항만 크레인 전량을 국내 업체에서 도입하기로 했다. 당초 부산항만공사는 2-5단계 부두 구축 과정에서 내부 문서에 ‘국산 크레인을 도입한다’는 취지의 문구를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사 측은 2026년 준공 목표인 2-6단계 부두 역시 크레인 전량을 국내 기업에 발주할 계획이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항만은 국가 기간 시설인 만큼 외산 장비 과점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2-6단계 부두도 (2-5단계 부두와) 동일한 기조로 크레인 발주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만공사들이 신규 크레인을 국산품으로 제한하려는 것은 보안 우려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자국 항구의 중국산 크레인이 첨단 센서로 군수물자 운송 정보 등 군사기밀을 수집한다며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특히 미국이 우려하는 업체는 자국 항만 크레인 시장의 80%를 차지한 중국 국영기업 상하이전화중공업(ZPMC)이다. 국내 항만 크레인 877기 중 48.7%(427기)도 ZPMC 제품이다.
우리 정부도 국가정보원을 중심으로 중국산 크레인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으며 결과는 이르면 올 상반기에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후속 대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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