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배터리 설비투자 자금 조달을 위해 한국산업은행에 대출을 요청했으나 사실상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사업의 특성상 초기에는 대규모 설비투자 등으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데도 적자 사업에 자금을 내줄 수 없다며 산은이 난색을 표한 것이다. 정책금융기관인 산은마저 국가 첨단 전략산업에 대한 대출을 외면해 설비를 제때 확충하지 못할 경우 이미 수주한 물량을 중국 등 경쟁국 업체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0일 금융권과 재계에 따르면 SK는 최근 산은에 SK온의 배터리 설비투자를 위한 자금 대출을 요청했다. SK는 현재 80GWh 수준인 배터리 생산 능력을 5년여 후 300GWh까지 확대할 계획이며 이에 따라 연간 7조 원 수준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SK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조 단위 자금을 시중은행에서 융통하기 어려우니 결국 정책금융기관을 찾을 수밖에 없다”면서 “산은이 수출입은행 등 여타 정책금융기관보다 대출 여력이 큰 만큼 SK가 산은과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산은은 SK의 이런 요청에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산은은 대외적으로는 배터리 사업 부진과 SK온의 설비투자 대상이 해외 공장이라는 점을 내세웠지만 산은의 자회사인 한국전력공사의 경영난이 이어지면서 재무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산은은 한전 지분 3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지분법 평가손에 따라 지분율만큼 산은도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당정에서 전기요금 동결을 결정하면서 한전이 올해 12조 원 이상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가늠하는 국제결제은행(BIS) 비율도 맞물려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SK가 적기에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예정된 설비 증설이 지연되면서 이미 수주한 물량을 소화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납기를 제때 맞추지 못하면 발주사가 중국 등 경쟁국 업체로 선회해 산업 경쟁력이 퇴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정부 내에서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제조업의 특성상 사업 초기에는 수년간 적자를 볼 수밖에 없지만 시장 자체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 만큼 실적 반등은 결국 시간문제”라며 “(납기를 못 맞춰) 발주사가 이탈해 한번 경쟁에서 뒤처지면 배터리 산업의 특성상 다시 따라잡기는 배로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SK온 관계자는 “산은과 추가 대출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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