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정제 마진이 2달러대로 추락하면서 실적에 경고등이 켜졌다. 정유사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4~5달러 수준으로 2달러대면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 셈이다.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수요가 줄면서 정제 마진의 내리막은 계속되고 있어 1분기 실적 악화는 물론 2분기 실적 회복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24일 정유 업계에 따르면 20일 기준 싱가포르 복합 정제 마진은 배럴당 2.35달러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제 마진은 1월 평균 10.1달러를 기록한 뒤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특히 정제 마진이 2달러대까지 내려온 것은 지난해 10월 27일(2.46달러) 이후 약 6개월 만이다. 지난해 정제 마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6월 넷째 주 평균 29.5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국내 정유사들의 수익은 해외에서 사 온 원유 가격과 정제·가공 후 판매하는 최종 석유제품(경유·휘발유 등) 가격의 차이, 즉 정제 마진에서 발생한다. 보통 배럴당 4~5달러가 이익의 마진노선으로 여기서 더 떨어지면 수익이 악화한다는 의미다.
정제 마진은 통상 국제유가에 따라 움직인다. 정유사들이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둔 배경에도 유가 상승에 따른 정제 마진 급등과 원유 재고 이익 증가가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유가가 올라도 정제 마진이 오르지 않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석유제품 수요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유가가 지속되는데 정제 마진이 하락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 감소가 공급 감소보다 크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정제 마진이 횡보하거나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생산 비중의 30%를 차지하는 경유의 정제 마진이 악화하고 있는 점도 수익성에 치명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경유 마진은 4월 셋째 주 기준 배럴당 12.5달러로 2012~2021년 평균치인 13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경유는 건설 경기가 살아나고 소비가 늘어 물류가 활발히 돌아야 수요가 늘어난다”며 “경유의 약세는 경기 둔화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뒀던 정유사들의 올해 실적에는 먹구름이 잔뜩 꼈다. 당장 1분기 이익은 최대 80% 가까이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증권 정보 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SK이노베이션(096770)의 1분기 영업이익 평균 추정치는 지난해 동기(1조 6491억 원)보다 82.17% 감소한 2941억 원으로 집계됐다. 배터리·분리막 등 비정유 사업의 부진한 실적도 반영됐지만 정유 부문에서 재고 손실 또한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에쓰오일의 1분기 영업이익 추정치 역시 5870억 원으로 전년 동기(1조 3320억 원)보다 55.93%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흥국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GS(078930) 역시 GS에너지의 실적 악화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2.7%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정유 업계의 한 관계자는 “5월부터 드라이빙 시즌이 시작되는 등 계절적 성수기 진입으로 2분기를 저점으로 정제 마진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면서도 “전반적인 마진을 견인할 석유제품 수요 부진이 여전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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