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을 금융회사가 배상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재검토하고 나섰다. 보이스피싱이 날로 고도화하면서 금융사뿐만 아니라 금융 소비자의 주의 의무도 중요해진 만큼 금융사에 100% 배상 책임을 지우기보다는 금융사와 피해 고객 간 과실 등을 고려해 피해액이 합리적으로 분담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최근 각종 금융 범죄 근절 차원에서 생체 정보를 활용한 비대면 금융 거래를 지원하기로 하면서 금융회사가 보이스피싱 배상 등을 강화하는 방안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금융사의 보이스피싱 배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보이스피싱 엄단’ 의지에 따라 주요 금융 공약에 포함되면서 당국은 검토 시점을 고민해왔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현재 전자금융거래법상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금융사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지만 금융사가 (보안) 절차상의 문제를 지키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객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부담하고 있다”면서 “지금처럼 금융사가 고객에게 본인 확인이나 거래 목적 등 단순 확인 절차를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스피싱) 책임이 없다고 보기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으로 피해액이 발생할 경우 배상 기준점을 고민해보자는 취지”라면서 “다만 고객별로 상황도 다르고 금융사들의 보이스피싱 예방 조치도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예방에 주의를 기울였는지에 따라 부담 비율을 다르게 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사의 배상 책임 강화와 함께 당국은 소비자에게 보이스피싱 예방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뒤 이를 얼마나 잘 따랐는지 등에 따라 보이스피싱 피해 책임을 다르게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이 관계자는 “사전에 금융사와 소비자가 예방할 수 있는 조치들을 얼마나 성실히 따랐는지 여부를 피해 배상 과정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보이스피싱 범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계좌 이체형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451억 원으로 1년 전(1682억 원)보다 231억 원(13.7%) 줄었지만 환급률은 26.1%(379억 원)에 불과하다. 특히 20대 이하와 60대 이상 피해액은 각각 92억 원, 673억 원으로 집계돼 전년보다 각각 40억 원(3.3%), 61억 원(9.7%)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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