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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고준위방폐물특별법 더는 미룰 수 없다

[최성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1980년대 중반 시작한 관리 논의

님트 현상으로 아직도 성과 못내

이해관계자 목소리 충분히 반영

이젠 국회서 법제정 매듭 지어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라는 말은 늦었다는 생각에 지레 포기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시작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반면 인기리에 방영됐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온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라는 말은 어떤 것이 잘못됐음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해학적으로 토로한 것이다. 둘 다 무언가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빠르든 늦든 뚝심 있게 시작하라는 뜻으로 읽힌다는 점에서 같은 얘기라고 할 수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여야가 발의한 3개의 특별법안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국회에 계류 중이다. 1월 공청회에서 특별법이 논의된 것을 계기로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이 법안 제정의 찬반은 물론 세부 내용을 놓고 심도 있는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제 다양한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 가장 중요한 국회에서의 논의를 매듭지어야 할 때가 다가왔다.

고준위방폐물특별법은 고준위 방폐물의 운반·저장 등 관리부터 최종적으로 발생하는 방폐물의 처분까지 전 과정을 사회적 합의 아래 안전하게 진행하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법안이다. 특히 관리 시설 부지 선정, 유치 지역 지원, 관리 기술 연구개발, 인력 양성 등 정권과 세대를 잇는 고민들이 담겨 있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 사업처럼 이해관계가 상충돼 다음으로 미루는 ‘님트(NIMT·Not In My Term)’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결의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세대가 지나친 완벽주의로 인해 그러한 노력을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긴 부끄러운 세대로 기억될 것이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 사업에는 지역 주민,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 산업계, 연구계, 학계 등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존재한다. 이러한 장기간의 국가 계획은 미래 세대마저도 이해 당사자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이해 당사자를 한 번에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계획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특별법 제정이 의미가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작은 해야 한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관리 시설 부지 확보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충분한 동의를 거치고 적절하게 보상할 제도적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법 제정에 이어 계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도 충분한 의견 수렴이 가능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장기 사업이 원자력 시설을 유치한 지역 주민과 국민의 신뢰 아래 투명하게 추진되고 진행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균형 발전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측면에서도 다가올 변화를 합리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적 진보도 무시하지 못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술이 보다 안전하고 경제적이면서 관리 면적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기술적 진보를 달성하고 이를 사회가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국 좋은 인력을 양성하는 데 달렸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고준위 방폐물 관리 사업과 관련된 논의는 골치 아픈 문제로 치부돼 시간을 끌다가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이는 1980년대 중반 시작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에 대한 논의가 아직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 여야가 특별법안을 발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더욱이 코앞으로 다가온 에너지 공급 위기와 원전 수출 경쟁력 저하, 사회적 갈등 고조 등 국가적 위기 상황임을 고려할 때 당면 과제를 더 이상 모른 체 할 수 없다. 기술적으로 보다 촘촘하고 사회적으로 충분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특별법 제정에 온 힘을 쏟아부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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