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차량기지를 경기 광명시로 이전하는 사업이 결국 백지화 수순을 밟게 됐다. 정부는 이전 사업의 추진 여부를 놓고 진행한 기나긴 조사 결과 “타당성이 없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구로차량기지의 광명 이전을 전제로 짜여진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9일 최상대 2차관 주재로 열린 ‘2023년 제2차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구로차량기지 이전 사업에 대해 ‘타당성 없음’으로 결론지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0년부터 올해 초까지 진행한 ‘구로차량기지 이전 타당성 재조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사업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본래 구로차량기지 이전 여부는 올 3월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지역주민 반발 등에 부딪혀 2개월 가까이 지연됐다.
구로차량기지는 지하철 1호선 개통과 함께 1974년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세워졌다. 하지만 인근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뒤로 소음과 진동에 대한 민원이 잇따르면서 2005년 ‘수도권 발전 종합대책’에 구로차량기지 이전 계획이 포함됐다. 정부는 2006년 KDI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이전을 본격화하려 했지만 지방자치단체 협의가 난항을 겪으며 사업이 중단됐다. 이후 구로차량기지 이전은 타당성 재조사만 두 차례를 반복하며 2005년 이후 18년 동안 공회전을 거듭했다.
결국 구로차량기지 이전 사업이 사실상 무산된 것은 이전 후보지였던 광명시의 극심한 반대 때문이다. 당초 광명시는 정부가 구로차량기지 이전을 강행해도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차량기지) 이전 부지가 있는 지자체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봤다”며 “(이전 사업은) 무산됐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정부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18년간 타당성 조사만 세 번을 실시했지만 결국 광명시와 서울 구로구 등의 지역 주민 간 갈등만 키운 채 시간만 허비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2021년 수립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역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해당 계획에 포함된 제2경인선이 구로차량기지의 광명 이전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구로차량기지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물론 구로차량기지 이전 자체가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다. 정부는 향후 예비 후보지가 등장하면 이전 사업을 재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차량 기지는 기피 시설인 데다 예타도 최소 1~2년이 소요되는 만큼 당분간 이전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현 정부의 재정건전화 기조에 맞춰 타당성조사가 까다로워진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충남 서산공항 건설사업도 이날 예타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충남도는 사업비를 줄여 예타를 받지 않는 ‘우회로’를 통해 사업을 재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도 “사업 추진 의지는 변함없다”고 했다.
한편 김포 장기와 부천 종합운동장을 잇는 서부권 광역급행철도 등 5개 사업은 예타 대상으로 선정됐다. 특히 예타 대상으로 선정된 서부권 광역급행철도, 부산~양산~울산 광역철도, 광주~나주 광역철도 등 3개 사업은 현 정부 국정과제다. 최 차관은 “지방 시대 구현을 목표로 하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는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이라며 “서부권 광역급행철도는 국토부 등과 협의해 조사 결과가 최대한 빨리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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