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률·실업률 등 통계청이 10일 발표한 4월 고용지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지난달 15세 이상 고용률은 62.7%로 1982년 월간 통계 작성 이후 4월 기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15~64세 고용률(69%)도 4월 기준 역대 최고치다. 실업자 수는 80만 4000명으로 4월 기준 2008년(79만 1000명) 이후 최저치다. 실업률은 2.8%로 전년 동기 대비 0.2%포인트 하락했다.
하지만 ‘고용의 질’을 보여주는 지표들은 이상 징후가 뚜렷하다. 주력 산업이자 ‘양질의 일자리’로 꼽히는 제조업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제조업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9만 7000명 쪼그라들며 2년 4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갈아 치웠다. 제조업 고용 상황을 보여주는 고용보험지표도 상황은 비슷하다. 고용노동부가 8일 발표한 ‘4월 노동시장 동향’을 보면 외국인을 제외한 국내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는 올 3월 1만 4000명에서 지난달 5000명으로 최근 한 달 새 1만 명 가까이 급감했다.
전체 취업자 증가도 공공 일자리가 대부분인 고령층이 견인했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31만 2000명 늘며 26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60세 이상을 제외하면 8만 8000명 줄었다. 60세 이상 취업자는 44만 2000명 늘었지만 ‘성장 엔진’인 청년층(15~29세)과 ‘경제 허리’격인 40대가 각각 13만 7000명, 2만 2000명 감소한 결과다. 특히 청년층 취업자는 2021년 2월(-14만 2000명) 이후 2년 2개월 만에 가장 많이 줄었다. 40대 취업자는 10개월 연속 감소세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며 청년층 고용 활력도 낮아지고 있다. 지난달 청년층 중 ‘쉬었음’ 인구는 41만 4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만 4000명(8.9%) 늘었다. 20대에서만 3만 8000명(10.8%)이 증가했다.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쉬었음’ 인구는 일할 능력은 있지만 치료·육아 등 구체적 이유 없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뜻한다. 지난달 20대 ‘쉬었음’ 인구 증가율(10.8%)은 60세 이상(12.1%) 다음으로 많았다.
문제는 올 하반기에도 고용 상황이 반등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당장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7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수출 역성장이 연내 회복세로 돌아서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 대중(對中) 교역 악화 등 대내외 교역 조건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대중 수출 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 기업 10곳 중 8곳 이상(84.3%)은 연내 대중 수출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고용 없는 저성장’ 국면도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고용탄성치를 0.313으로 추산했다. 고용탄성치는 경제 성장이 얼마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올해 고용탄성치는 지난해(1.154)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로 1964~2022년 평균값(0.34)과 비교해도 낮다. 올해 한국 성장률이 1%대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고용시장까지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 같은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대중 수출이 회복세를 보여도 극적인 수준은 아닐 것”이라며 “경제 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해 중동·동남아시아 등 신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당장 내년부터 성과가 나오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적극적인 세금 감면 정책을 통해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대기업 투자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획재정부와 고용부는 이날 서울고용센터에서 ‘일자리 전담반 5차 회의’를 열고 4월 고용 동향 등을 논의했다. 일자리 전담반은 회의에서 청년 일자리 정책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 고졸, 니트(NEET) 등 구체적 상황을 분석한 후 추가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일자리 전담반을 중심으로 추가적 일자리 정책 과제를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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