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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기술 발전과 개인정보 보호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장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장




‘기술 발전이 시급한데 개인정보 보호 제도가 발목을 잡는다.’ 종종 듣는 얘기다. 법이나 규제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불필요하게 저해해서는 곤란하다. 과연 개인정보 보호는 기술 발전과 경제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은 거추장스러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실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논의의 역사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과 해당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역사다.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현대적 논의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됐다. 그 무렵은 사진기가 새로이 개발되고 관련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사회적 맥락에서의 획기적 변화는 이동이 가능한 방식의 사진기가 개발되면서 나타났다. 이동 가능한 사진기의 개발과 함께 사회 활동의 다양한 단면이 사진을 통해 담기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자극적 가십을 전파하는 매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매체의 등장은 신기술의 상업적 활용이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부작용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작동했다.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개인정보 보호에 관해 별도의 법적 권리를 정립할 필요성을 주장한 논문이 이 무렵 처음 나타났다. 1890년에 발표된 이 논문은 개인정보 보호 영역에 대한 법·제도적 관심을 크게 높이는 역할을 했다.



개인정보 보호에 관해 법·제도와 정책의 관점에서 더욱 본격적인 관심이 나타나게 된 것은 1960년대다. 이 시기는 메인 프레임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컴퓨팅 기술의 발전과 대중화가 한 단계 도약한 시기다. 메인 프레임 컴퓨터를 이용해 대규모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해지고 이런 기술의 활용이 좀 더 편리해지면서 새로운 기술 환경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 관점에서의 우려의 시각 또한 제기됐다.

많은 논의 끝에 미국에서는 프라이버시법이 1974년에 제정됐고 유럽 각국에서도 1970년대 이후로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이 속속 마련됐다. 1980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개인정보 보호의 주요 원칙이 공개되기도 했고 그 후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 전체를 아우르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입법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적어도 OECD 국가에서는 개인정보 보호가 현대사회의 핵심 법·제도 영역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됐다.

이러한 흐름은 근래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와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됐고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에 개인정보보호법이 입법됐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이에 맞춰 개인정보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새로운 과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요컨대 개인정보 보호는 데이터와 관련된 새로운 기술 개발에 대해 어떻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우리 삶에 유용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인지에 관한 끊임없는 논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관련 기술을 둘러싼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데 꼭 필요한 선결 요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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