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주 하이엔드 테크 기사에서는 세계 D램 반도체 3강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D램 공장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2편 기사에서는 마이크론이 또다른 메모리 종류인 '플래시(낸드와 노어)' 제품을 어디서 어떻게 생산하는 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D램과 마찬가지로 여러 M&A, 합종연횡 이야기가 섞여 있습니다. 아울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전략 선봉을 자처한 마이크론이 홈그라운드인 미국에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지, 마이크론이라는 회사가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 어떤 의미인지를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자, 우선 오늘도 본사가 있는 미국보다 낸드플래시 기지가 있는 싱가포르로 가봅시다.
M&A와 합작법인으로 낸드 키운 마이크론
우선 큰 그림부터 봅시다. 우선 플래시. D램과는 달리 IT 기기가 꺼져도 정보가 내부에 저장되는 '비휘발성' 메모리죠. 12인치 웨이퍼 기준 1분기 마이크론의 월 플래시 생산량은 13만 5000장 수준입니다. 대만 유력 시장 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세계 낸드플래시 생산량은 월간 163만 3000장 수준인데요. 마이크론의 플래시 생산량은 전체의 8.2%를 차지합니다. 삼성전자(월 65만6000장·40.17%), 일본 기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합작 생산법인(월 43만5000장·26.64%), SK하이닉스와 자회사 솔리다임(월 26만3000장·16.11%)의 뒤를 잇습니다. 플래시 시장은 제조사들의 경쟁이 아주 치열합니다. 확실히 생산량만 놓고 보면 마이크론은 플래시보다 D램에서 강한 면모를 띄고 있죠.
미국에 본사를 둔 마이크론이 D램의 60%를 대만에서 생산하는 것처럼요. 낸드플래시도 전체의 76%(월 10만 3000장)를 싱가포르라는 아시아 국가에서 생산합니다. 싱가포르에 생산 법인이 몰린 이유 역시 마이크론은 낸드플래시 사업을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이나 타사와의 합작법인으로 키웠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론은 싱가포르에 크게 2개의 팹(팹 7, 팹 10)이 있는데요. 이 공장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차근차근 살펴봅시다.
우선 마이크론 팹 중 가장 유서깊은 팹7. 이 공장은 약 30년 전인 1991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원래 이 공장의 주인은 '테크(TECH) 세미컨덕터'였습니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휴렛 팩커드(HP),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 일본 캐논이 1991년 뜻을 맞아서 세운 회사입니다. 원래 이 회사는 D램을 만드는 회사였는데요. 마이크론은 사상 초유의 경제 불황과 그에 맞물린 D램 시장 위기, D램 치킨 게임이 발발할 때마다 이 공장의 지분을 차근차근 인수합니다.
마이크론은 1998년 금융 위기와 반도체 한파가 닥칠 당시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가지고 있던 지분을 인수하고요. 2007년 싱가포르 경제개발청, 메모리 '치킨게임'이 한창이던 2011년에 캐논과 HP의 지분을 마저 사들이며 100% 지분을 완성해냅니다.
그리고 마이크론은 낸드플래시 사업 강화를 위해 지난 2014년 이 D램 공장을 낸드 팹으로 전환합니다. 2012년 일본 엘피다 인수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3강 체제가 구축되자 한숨을 돌린 시점과 일치합니다. 2013년 삼성전자가 노어(2D)→3D 낸드 상용화로 플래시 시장 최정상 군림에 도전하자 이 D램 공장을 플래시 팹으로 전환한 것으로 강하게 추측됩니다. 현재 3D 낸드 생산에 기여하고 있는 이 공장의 생산 능력은 월 2만3000장 수준입니다.
자, 이제 팹7에서 약 6.2km, 차로 15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또다른 싱가포르 공장 팹10 건물을 살펴봅시다. 팹7보다 규모가 더 큽니다. 이 공장 탄생 배경도 흥미롭습니다. 이 공장은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과 협력해서 만들었습니다. 마이크론과 인텔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5년에 'IM플래시'라는 조인트벤처(JV)로 낸드 시장 정벌에 나섭니다. 미국 유타 주에 본사를 두고 공동설립 합니다. 이듬해 싱가포르에 새로운 공장을 짓겠다는 발표로 업계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이 공장이 바로 팹10(팹10N)입니다.
2011년부터 공식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던 이 공장은 확장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투자 형태는 약간 달라집니다. 2013년 삼성의 '3D 낸드플래시' 상용화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IM플래시는 새로운 유형의 낸드인 '3D 크로스(X)포인트 낸드' 개발을 비밀리에 시작하는데요. 다만 당장 상용화를 위한 3D 낸드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2015년 마이크론은 인텔과 공동 투자 없이 팹10 바로 옆에 3D 낸드 사업 추격을 위한 공장 확장(팹10 N)을 선언합니다.
이후 2018년 마이크론은 이 공장 바로 아래에 팹10A 낸드 공장 확장을 공식적으로 알렸습니다. 이렇게 단계적인 확장으로 지금의 팹10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 2019년에는 IM플래시 종료와 함께 이 JV의 인텔의 지분 전량을 매입하면서 싱가포르 팹10의 주인은 완전히 마이크론이 됐죠.
이렇게 다양한 M&A와 공사를 거친 팹10 전체 생산 능력은 월 약 8만장 수준. 마이크론이 세계에서 처음 양산한 232단, 176단과 낸드와 128단 낸드 등이 골고루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최신 공장 중심으로 생산능력 확장이 있을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또한 업계 이야기를 취합하면 팹7과 팹10도 대만 D램 팹 운영 전략과 같이 한 개 팹처럼 관리하는 방향을 택했다고 합니다. 두 자리에 공정을 나눠 관리하면 생산 능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게 그 배경입니다.
나머지 낸드 팹을 보러 미국으로 가보겠습니다. 지난 시리즈에서 마이크론이 가지고 있던 미국 버지니아 팹을 잠깐 언급드렸죠? IM플래시의 공동 자산이기도 했던 이 버지니아 팹에서도 플래시 메모리 생산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낸드 플래시와는 종류가 다른 노어(NOR) 플래시가 생산됩니다. 2010년대 수직으로 저장공간을 쌓아올리는 3D 낸드플래시가 유행하기 전에 시장을 장악했던 '레거시' 메모리인데요. 3D 낸드처럼 대세를 잡지 못하고 저장 공간은 낸드보다 작다는 단점이 있지만 정보 전달 ㅅ속도나 읽기 능력이 뛰어난 데다 안전성까지 높아 차량용 메모리로도 각광을 받고 있죠. 마이크론은 버지니아 매나세스 팹에서 월 약 3만장 규모 노어플래시를 생산 중입니다.
아주 잠깐 짚고 넘어갈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이크론은 팹을 인수한 만큼 매각한 사례도 많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2021년 인텔과 야심차게 개발했던 낸드인 '3D 크로스(X)포인트' 제품 생산 설비 미국 유타주 리하이 공장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 팔았고요. 한때 일본 고베제강에서 인수해 운영하던 D램 공장은 2011년 파운드리 업체 타워재즈에, 이미지센서 공장이었던 이탈리아 아베차노 공장은 '엘파운드리'라는 기업에 2013년 넘겼습니다. 이정도면 메모리 업계 설비 M&A 대명사는 '마이크론'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같네요.
해외 거점은 물론 본토 확장까지 노리는 마이크론
마이크론은 세계 D램 3위, 낸드 5위 회사입니다. 아직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비해 규모의 차이는 큽니다. 그러나 추격 속도는 절대 간과할 수 없습니다. 마이크론은 대만, 싱가포르가 아닌 본사가 있는 미국 본토에 두 가지 굵직한 투자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마이크론의 연간 생산 설비 투자가 100억달러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서 살펴봐주세요.
지난 2022년 9월에는 본사 아이다호 주 보이시에 2030년 경까지 150억달러(약 20조원)을 투입해 초대형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마이크론은 미국 내 20년만에 메모리 공장이 들어온다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바로 다음달인 지난해 10월에는 향후 20년 이상 1000억달러(약 134조원)를 미국 뉴욕 주에 투자한다고 선언했습니다. 2030년 안에 20억달러를 지출해 첫번째 뉴욕 공장 설립을 추진한다고 하고요. 궁극적으론 이곳을 회사 D램의 40%를 만드는 기지로 구축한다고 합니다. 지금 마이크론은 월 총 30만장 정도의 D램이 생산되고 있으니까요. 지금 상황에서만 딱 놓고 보면 월 12 만장 규모 팹입니다. SK하이닉스가 2015년부터 가동한 M14 공장 한 개의 1분기 기준 생산 능력(13만 5000장)과 맞먹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생산능력은 더 늘어날거니까, 뉴욕 주를 중심으로 사세를 키울 공산이 큽니다.
M&A로 덩치를 키웠던 회사가 자국 영토 안에 초대형 공장을 갖추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입니다. 마이크론은 미국 바이든 정부가의 지난해 8월 반도체과학법(CHIPS ACT) 공포 이후 인텔과 함께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위상 회복을 위한 선봉장을 자처했습니다. 반도체가 어느새 기술 패권의 심볼로 자리잡고, 아시아에 몰린 반도체 제조를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는 게 미국 반도체법의 골자인데요. 미국의 마이크론과 미국의 메모리 산업. 과연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생산 능력 측면에서 미국 정부의 '빵빵한' 지원이나 삼성, SK하이닉스를 뒤집을만한 묘수를 꺼내들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마이크론은 일본에도 투자합니다. 지난해 9월 1편에서 살펴봤던 히로시마 팹 인근에 새로운 D램 설비를 짓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마이크론의 약 1조 3800억원 투자에서 4600억원을 지원합니다. 미국-일본 반도체 동맹의 가교를 마이크론이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번 시리즈는 주로 생산 능력에 대해 다뤘지만 마이크론은 기술력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용이나 생산능력에서 1위 삼성전자나 뒤를 잇는 SK하이닉스가 우위일 수 있겠지만 말이죠. 지난해 7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200단을 넘긴 232단 낸드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양산했고요. 2021년에는 10나노 4세대 D램도 처음으로 양산하면서 수년 간 한국 메모리 업계를 여러 번 깜짝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D램으로 각광받는 EUV 개발도 본사 연구소에서 한창이고요, 미래를 위한 3D D램 개발도 열심이라고 합니다. 이들과 우리나라 업체 간 기술 격차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마이크론은 절대 멈춰있거나 속도가 느린 회사가 아닙니다. 국가적 지원과 설비 투자는 물론 기술 관점에서도 우리나라의 라이벌 업체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봐야 한다는 업계 전문가들의 시각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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