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에 모인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강력한 중국 견제 의지를 다졌다. 공동성명에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경고와 우려를 노골적으로 담았을 뿐 아니라 중요 광물 관련 공급망 구축, 경제적 강압 조정 기구 신설 같은 대중 압박 조치들에 대한 합의도 이뤘다. G7 정상들이 전날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별도 성명에서 러시아를 규탄한 데 이어 이 같은 내용의 공동성명까지 발표하면서 신냉전 체제가 심화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G7 정상들은 정상회의 둘째 날인 20일 글로벌 경제 및 무역, 기후변화, 핵군축·비확산, 에너지 등의 주제를 총망라한 40쪽 분량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각 지역의 현안과 G7의 요구 사항을 열거한 대목에서 정상들은 “중국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중국과 솔직하게 소통하고 우리의 우려를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위험 요소를 줄이고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며 “중요한 공급망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의 비시장적 정책 및 관행이 야기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보 문제와 관련해서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어떠한 힘이나 강압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며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최근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 운영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G7이 이례적으로 중국에 해외 국가에 대한 간섭 활동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성명에 담긴 대중 견제 수위가 지금까지 나온 G7 성명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했다. 위와 같은 직접적 경고 외에도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각종 경제안보 조치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G7이 성명에서 중요 광물 및 청정에너지 기술 관련 공급망 구축 방침을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중국이 배터리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현재 중국이 가공하는 리튬·코발트 등 핵심 광물은 전 세계 공급량의 약 80%에 달해 서방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G7은 ‘경제적 강압에 대한 조정 플랫폼’을 신설해 G7 이외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국이 희토류·요소 등 수출 금지 조치로 일본·한국·호주 등을 압박했던 전례가 있는 만큼 대응 체제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아울러 G7은 “우리가 개발한 첨단 기술이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군사력 증강에 사용되지 않도록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역시 미국이 중국에 대해 첨단 반도체 수출 제한 등 규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독일·프랑스가 정상급 인사의 방중 등으로 중국과 경제적 밀착을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이 같은 공동성명을 낸 데 대해 폴리티코는 “대중 정책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미국·유럽·일본의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신냉전 체제에서 중국과 같은 진영에 있는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규탄도 공동성명에 담겼다. 앞서 전날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공동성명에서 러시아를 비난한 G7은 이날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다시 한번 비난한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또 북한에 대해 “국제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추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발사를 자제해야 한다”며 “그런 무모한 행동은 반드시 강력한 국제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동성명 발표 날 밤에 열린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 정상회의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쿼드 정상회의는 당초 24일 호주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부채 한도 협상 문제로 귀국 일정을 앞당기면서 히로시마에서 개최됐다. 정상들은 회의 후 공동성명에서 “무력으로 현상을 바꾸려 하는 일방적 행동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전날 일본에 도착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폐막일인 21일 각종 세션에 회원국 정상들과 함께 참석해 공조를 과시했다. 통상 폐막일에 발표되는 G7 공동성명이 이례적으로 폐막 전날 발표된 것에 대해 일본 교도통신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의도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