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렸던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사모펀드(PEF)가 보유했던 기업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0년 넘게 이어진 저금리 시기에 잇단 인수로 덩치를 키운 PEF들의 자금 회수 결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돈을 맡긴 기관투자가(LP)들 사이에서도 대형 인수보다는 매각 결과에 따라 추가 출자를 결정하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한앤컴퍼니·IMM프라이빗에쿼티(PE)·JKL파트너스 등 국내 자본시장에서 초창기에 등장한 경영권 투자 PEF 운용사들이 현재 두 개 이상 기업들의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운용사들은 펀드 만기와 후속 펀딩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올해부터 매각을 실행해야 할 기업 숫자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PEF 약정액 기준 1위 PEF 운용사인 한앤컴퍼니에 가장 먼저 시선이 쏠린다. 한앤컴퍼니는 2015년 2조 7500억 원에 한온시스템(018880) 경영권을 인수한 뒤 현재까지 이 회사 지분 50.5%를 보유하고 있다. 투자펀드 만기가 다가오고 공동 투자자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161390)의 매각 의지가 높아 올해 매각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한앤컴퍼니는 이 밖에도 SK해운 유조선사업부, 중고차 플랫폼 기업 케이카(381970), SK에코프라임, 쌍용레미콘 등 다수의 기업 경영권을 시장에 내놓고 협상을 이어가면서 최근 가장 활발한 매각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 기관투자가는 “한앤컴퍼니가 웅진식품의 성공적인 매각 이후 어떤 결실을 낼지에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IMM PE 역시 수차례 매각을 시도하고 있다. 2017년 인수했던 화장품 브랜드 에이블씨엔씨(078520)의 매각을 위해 이르면 이달 말 본입찰을 실시한다. 2014년 인수한 현대LNG해운은 한 차례 매각 시도가 무산됐지만 이번에는 모회사 격인 HMM이 인수 의향을 밝히면서 청신호가 켜졌다.
MBK파트너스는 2019년 1조 3810억 원에 인수한 롯데카드를 언제든 매각할 후보 기업으로 올려놓았다. 이미 지난해 JP모건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매각을 타진했으며 예비입찰 과정에서 KB금융지주와 네이버 등이 구속력 없는 인수 의향을 밝혔다. 다만 이들의 의지가 높지 않았고 금리 인상과 시장 위축으로 본입찰 시기가 미뤄졌다. MBK와 같은 시기에 롯데손해보험(000400)을 3700억 원에 인수했던 JKL파트너스는 역시 내년 매각을 앞두고 인수 후보들의 의향을 타진하고 있다.
이 밖에 PI첨단소재(178920)(글랜우드PE), 여기어때(CVC캐피탈), 전주페이퍼(모건스탠리PE), 대경오앤티(스틱인베스트먼트), 맘스터치(케이엘앤파트너스), 버거킹(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등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올 초부터 다수의 M&A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면서 “1년 여간 큰 폭으로 뛰었던 인수금융 금리가 안정세로 접어들자 다시 기업 인수를 추진하는 PEF와 대기업들이 증가하는 것이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다수 매물이 시장에 등장하면서 한편에서는 PEF들의 불꽃 튀는 인수전을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대형 PEF들이 국민연금 등 기관들의 출자 사업에 잇따라 지원하는 등 자금 조달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국내의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PEF 운용사들의 과거 운용 실적과 신규 인수 후보 기업 등을 고려해 출자 운용사를 최종 선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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