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 지주회사들이 고금리·고물가에 신음하는 서민 경제의 ‘최후의 보루’로 자리잡고 있다. 서민 경제가 붕괴하면 금융 역시 존재 이유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바탕으로 ‘포용 금융’의 가치를 넓혀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취업 박람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그린 파이낸스’ 등 금융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을 통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범위를 넓히고 있다.
24일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은행이 올해 들어 4월까지 사회 공헌 활동을 지원한 금액은 3236억 원으로 지난해 연간 지원액(6136억 원)의 절반을 이미 넘어섰다. 코로나19가 확산할 때 제공됐던 정부와 금융권의 지원책이 지난해 말부터 차츰 종료되고 서민과 중소 상공인의 부담이 급증하게 되자 금융권 자체적으로 취약 계층 지원을 연장하거나 늘려왔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고금리 상황에서 금융의 공공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은행도 충분히 동의하는 부분”이라며 “특히 서민 경제가 무너지면 은행 역시 위기를 피할 수 없는 만큼 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4대 금융 그룹들은 코로나19 취약 계층을 위한 다양한 상생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비대면 주택담보·전세자금·신용대출 금리를 최대 0.5%포인트 인하하고 최고 연 8% 금리를 제공하는 ‘하나 아이키움 적금’ 등을 출시하며 다자녀 가구 금융 지원을 강화했다. 또 높은 이자를 내던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해 금리를 인하(최대 2%포인트)하고 취약차주들에 대해서는 대출을 연체하더라도 가산금리를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내려주기로 했다.
KB금융그룹도 신용대출 금리는 최대 0.5%포인트, 전세자금과 주담대 금리는 최대 0.3%포인트 인하하고 5000억 원 규모의 제2금융권 대출 전환 상품인 KB국민희망대출 상품을 내놓았다. 중소 상공인을 위해서는 금리를 인하하는 한편 영세 사업자에는 공과금과 월임대료, 경영 컨설팅을 위해 6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신한금융그룹도 △0.3~0.4%포인트의 대출 금리 인하 △금리 7% 초과 취약 중소기업에 대한 금리 인하(최대 3%포인트) △신한 SOHO 사관학교를 통한 상권 분석과 경영 컨설팅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우리금융그룹은 주담대 및 전세자금·신용대출 금리 인하와 5000억 원 규모의 청년 도약 대출, 서민 금융 대출의 성실 상환 고객에게는 대출 원금 1% 감면 등을 시행한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KB금융은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취업 박람회인 ‘KB굿잡 취업박람회’를 올해로 23회째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누적 방문자 수 113만 명, 참여 구인 기업만 4900여 곳에 달하며 8만 2000여 건의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3만 2000여 명에게 일자리를 연결시켰다. 하나금융도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200여 개의 사회 혁신 기업에 청년 디자이너, 장애인, 경력 보유 여성 등 인턴을 매칭하고 ‘하나 소셜벤처 유니버시티’를 통해서는 청년 창업가 550명을 육성했다. 신한금융은 ‘신한 동행 프로젝트’를 통해 4조 7000억 원 규모의 창업·일자리 지원과 청년 계층의 자산 증대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금융사들은 소외 계층과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위해 다양한 재단을 설립, 전문성과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다문화가족을 위한 공익재단인 ‘우리다문화장학재단’을 2012년 설립해 520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으며 지난해는 취약·소외 계층의 생활 자립과 성장 지원 등을 위해 문화 사업 지원, 생활환경 개선 등을 추진하는 ‘우리금융미래재단’도 설립했다. 하나금융은 하나금융공익재단·하나금융나눔재단·하나미소금융재단 등 세 곳을 통해 노인 요양 시설과 영유아 보육 시설을 운영하고 불우 아동을 지원하는 한편 저신용·저소득 금융 소외 계층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방적인 사회 공헌 활동이 아닌 금융사들에도 혜택이 돌아가는 ESG 활동에도 나서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속 가능한 금융, 그린 파이낸스(친환경 금융) 등이다. KB금융은 2030년까지 ESG 상품과 투자·대출 규모를 50조 원까지 확대하는 ‘그린 웨이브 2030’ 전략을 세웠다. 하나금융은 2030년까지 지속 가능 부문에 60조 원 규모의 ESG금융 조달과 공급을 목표로 했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3분기까지 ESG 채권 4조 3000억 원, ESG 여신 11조 원, ESG 투자 1조 5000억 원 등 총 17조 원 규모의 ESG 금융 조달 및 지원을 달성했다. 한 금융 지주 경영연구소장은 “은행들은 예대금리 차에 기반한 전통적인 사업 구조를 탈피해 또 다른 수익원을 발굴해야 한다”며 “금융의 사회적 책임도 중요해지는 만큼 그린 파이낸스가 미래의 중요한 먹거리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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