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경기가 3분기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벤처기업들의 돈줄이 빠르게 말라붙고 있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기마저 고꾸라지면서 벤처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31일 한국산업은행에 따르면 KDB 벤처종합지수는 올해 1분기 430.8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489.7)에서 12.03% 급락했다. 지수는 지난해 2분기 550.9에서 3분기 5.26% 하락한 521.9를 나타낸 데 이어 4분기 489.7로 6.17% 떨어졌고 올해 1분기까지 3분기 연속 내렸다. 벤처종합지수가 3분기 내리 뒷걸음질한 것은 분기 단위 조회가 가능한 2019년 이래 처음이다.
KDB 벤처종합지수는 산업은행이 벤처 경기를 진단하기 위해 2018년 고안한 지수다. 2008년 1분기를 기준점(100)으로 삼고 있으며 △투자 재원 △투자 실적 △회수 여건 등 세 가지 세부지수를 책정한 뒤 종합지수를 산정한다.
세부지수를 뜯어보면 낙폭을 더 실감할 수 있다. 신규 투자조합 조성 금액 규모를 보이는 투자재원지수는 올 1분기 638을 기록했는데 전 분기 대비 15.85% 감소한 수치다. 신규 투자 기업 수와 투자 금액을 가늠할 수 있는 투자실적지수도 같은 기간 15.55% 줄었고 회수여건지수도 1% 낮아졌다. 금융 당국의 한 인사는 “지난해부터 실물 경기 둔화세가 이어지고 있고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심리 자체가 얼어붙은 영향”이라면서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쉽지 않은 데다 민간 출자자들이 투자금을 조기에 회수하기 쉽지 않다고 보고 벤처펀드 출자에 보수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경기 둔화에 맞물려 벤처로 유입되는 자금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벤처 신규 투자 금액은 8815억 원에 그쳤는데 지난해 동기 투자금액(2조 2214억 원)에 견주면 60.3%나 급감했다. 새로 결성된 조합 수도 크게 줄었다. 신규 투자 조합 수는 1분기 43곳에 그쳤는데 지난해 분기 평균 신규 투자조합 수(95곳)를 한참 밑돈다.
당국이 잇달아 벤처기업을 지원하겠다며 조 단위의 돈 보따리를 풀겠다고 했으나 시장의 냉기를 녹이기에는 역부족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1월 창업·벤처기업 육성에 29조7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으며 산업은행도 기업은행과 함께 세컨더리 펀드 규모를 1조 5000억 원으로 기존보다 3배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세컨더리 펀드는 다른 벤처펀드가 투자한 주식을 매입해 수익을 올리는 펀드로 기존 만기 도래 펀드의 회수를 돕는 역할을 한다. 국내 스타트업의 한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할 시리즈 B 단계에 있는 기업들이 특히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새로 투자를 받기보다는 기존 투자자 도움으로 연명하기 급급한 곳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벤처 경기 반등 시점을 점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체로 투자재원지수 등락에 따라 투자실적지수가 좌우되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벤처 경기 하락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있으며 경기 침체 우려에 따라 위축된 투자심리의 회복은 당분간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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