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산학연 협력과 이를 기반으로 한 창조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 바이오 산업이 제조 분야에서는 일정 수준에 도달했지만 신약 개발과 같은 혁신 측면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혁신을 위한 기반과 토대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1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비스타워커힐서울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3’의 특별대담에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첨단바이오 생태계 조성 요건에 대해 이같이 제언했다.
남준 조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학교수가 진행한 이번 대담에는 수브라 수레시 휴렛팩커드 이사회 의장, 제프리 글렌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 폴 류 미국국립보건원 인간유전체연구소 연구부소장, 숀 파텔 미국 리엑트뉴로 창업가, 게릿 스톰 싱가포르국립대 의대 교수, 모르데카이 셰베스 전 와이즈만연구소 기술이전 부총장, 롤런드 일링 아마존 웹서비스 최고의료책임자, 마크 코언 칼 일리노이대 의대 학장, 우지 소퍼 알파타우 최고경영자(CEO) 등 열 명의 바이오 석학이 참여했다.
소퍼 CEO는 대학과 의료기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스라엘 바이오·생명공학 생태계를 예시로 들었다. 그는 “이스라엘에 있는 스타트업 90% 이상이 대학과 연계돼 있고 이는 기술이전과도 긴밀히 연결된다”며 “독일 바이오앤테크가 화이자 백신을 짓는 공장 부지로 예루살렘을 선택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훌륭한 바이오 생태계와 지적재산권에 대한 존중 덕분”이라고 말했다.
기술 이전 등 연구개발(R&D) 단계의 기술을 체계적으로 상업화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셰베스 전 부총장은 “한국은 기술이전 유닛 등의 조직을 만드는 것을 잘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며 “보통 교수나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연구한 내용을 어떻게 상용화할 수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기술이전 전문 조직들이 이런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기술이전 등을 전문적으로 하는 조직은 관련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이들과의 교류에서 과거 실패로부터 배우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기술이전뿐 아니라 연구자 창업이 활성화돼야 산학연 혁신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고언도 함께 제기됐다. 학자 출신으로 여러 바이오 스타트업에도 몸을 담은 스톰 교수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네덜란드와 싱가포르 연구 환경에 대해 설명하면서 “연구실의 과학기술을 사회적 이익으로 전환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생태계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바이오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파텔 창업가는 “기술과 혁신을 가장 초기 단계인 연구실에서부터 끌어내려는 마법과 같은 환경들이 중요하다”며 “실패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업가들과 학계를 지원하려고 하는 자본 소유자들, 정책 입안자들을 비롯해 이러한 환경과 인프라를 조성하려는 시도가 혁신을 위한 에너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바이오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대학뿐 아니라 초등교육 단계부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 체계를 갖춰야 혁신적인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취지다.
셰베스 전 부총장은 “교육이야말로 사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수익성 높은 투자”라며 “특히 교육은 바이오 혁신 생태계 조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지식이 아닌 도구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공지능(AI)을 비롯해 혁신을 떠올릴 수 있는 교육을 해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도록 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언 학장도 “다양한 산업계와 정부가 힘을 합쳐 ‘다학제 그룹’을 꾸려야 더 빠른 속도로 혁신을 이끌 수 있다”며 “향후 10년간은 학문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차세대 인재를 양성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 했다.
인재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제언도 동시에 나왔다. 글렌 교수는 “실패를 받아들일 줄 아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특히 한국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미국 실리콘밸리가 실패를 용인하는 방법을 통해 발전했듯 한국에서도 인재들이 실패에서 배우는 연습이 이뤄져야 바이오 혁신 생태계도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소퍼 CEO도 “교수진과 학생의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데 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에서만 발휘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교과서를 공부하듯 학습할 지식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 현장에서는 어떤 지식을 어떤 방법으로 학습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다는 김무환 포스텍 총장의 질문에 류 부소장은 “사고방식을 바꾸며 새로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게 중요하다”며 “모든 지식은 5~10년 내에 휘발되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시시각각 받아들이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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