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반도체 회사 인텔이 서울에 데이터 센터 메모리 인증 연구소(lab·랩)를 세운다. 인텔은 이번 설립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과의 협력 속도를 더욱 끌어 올린다는 방침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24일 대만에서 열린 ‘인텔 비전 2023’ 행사에서 서울에 ‘어드밴스드 데이터센터 디벨롭먼트 랩(첨단 데이터센터 개발 연구소)’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인텔이 서울에 연구개발(R&D)·인증을 위한 별도의 인프라를 세우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연구소는 올해 가동할 예정이며 정확한 랩의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데이터 센터는 각종 대용량 정보를 모아두는 시설이다. 적게는 수백 대, 많게는 수만 대의 저장 서버를 내부에 설치한다. 한 개의 서버 안에는 각종 정보를 연산하는 중앙처리장치(CPU), 기억 장치인 메모리 등 반도체 부품으로 구성된다. 최근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시장 규모 증가로 미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대규모 데이터 센터 수가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인텔의 새로운 연구소는 성장 잠재력이 큰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시장에서 자신들의 생태계를 더욱 공고하게 다지기 위해 만드는 시설이다. 인텔은 서버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반도체인 CPU 시장에서 글로벌 시장 80% 이상의 독보적 점유율을 차지한다. CPU와 연동해서 움직이는 부품들 간 호환성이 높아질수록 데이터센터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의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진다. 또한 다수 업체와의 끈끈한 기술 협력으로 서버 고객사들에 원가 절감·제품 안정성과 신뢰도까지 어필할 수 있다.
인텔은 서울을 포함, 미국·멕시코·중국·대만·인도 등 6개 나라에 연구소를 세운다. 각 나라에는 서버용 반도체에 관한 각기 다른 연구와 인증 작업이 이뤄진다. 서울 연구소에서는 데이터센터용 메모리에 관한 인증과 연구를 진행한다. 새롭게 떠오르는 D램 규격인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DDR5 제품에 대한 평가·인증 작업이 이뤄진다.
메모리 강자 있는 韓서 첨단 메모리 인증 속도…삼성·SK와 ‘윈윈’
서울에 메모리 인증을 위한 연구소를 마련하는 것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1·2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염두에 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D램 시장에서 70%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한다. 메모리 시장 리더십을 잡고 있는 만큼 차세대 메모리 기술력도 뛰어나다. 인텔이 CPU와 메모리 간 호환성과 연결 안전성을 따져야 할 때 가장 협력을 많이 해야 하는 업체로 손꼽힐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본사가 위치한 한국에 인증 거점을 마련하면 서버 고객사에 더욱 빠르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인텔의 전략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인텔의 한국 랩 설립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 역시 매출의 큰 축인 서버용 D램 분야 확장을 위해 기술 개발과 양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인 옴디아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용 D램 시장은 올해 939억 5300만 달러 규모에서 2026년 104.15% 늘어난 1918억 100만 달러(253조 7100억 원)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인텔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협력의 빈도를 높이고 개발 속도를 앞당기려는 시도를 할수록 자연스럽게 차세대 서버 시장에 더욱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난다.
현재도 한국 메모리 업체와 인텔 간 메모리 인증 협업은 끈끈하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최첨단 10㎚(나노미터)급 5세대(1b) 공정으로 만든 DDR5 D램을 인텔에 제공해 ‘인텔 데이터센터 메모리 인증 프로그램’ 검증 절차에 돌입했다. 디미트리오스 지아카스 인텔 부사장은 “인텔은 DDR5와 인텔 플랫폼 호환성을 검증하기 위해 메모리 업계와 밀접하게 협업 중”이라며 “SK하이닉스는 업계 최초로 인텔 데이터센터 메모리 인증 프로그램 검증을 거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텔의 수장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한편 한국 정보기술(IT) 회사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2021년 인텔의 새로운 CEO로 선임된 후 지난해 5월, 12월에 이어 올 5월에도 한국을 찾았다. 그는 지난해 5월 방한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나 차세대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협력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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