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가 설립 이후 처음으로 투자기업에 대한 주주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고 있다. 주주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등 책임투자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1일 KIC는 지난달 24일 미국 생명과학기업 써모피셔사이언티픽을 시작으로 주요 투자 기업에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주부터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에너지와 스위스 광물기업 글렌코어,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와 글로벌 에너지기업 엑손모빌 등의 주주총회에서도 표결에 참여했다. 오는 2일 열리는 구글의 지주사 알파벳 주주총회에서도 의결권을 행사할 계획이다.
KIC는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을 포트폴리오 내 비중 등 보유 규모가 크거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높은 기업 위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기업 10곳 이상에 의결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강화하는 내용의 주주 제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등 세계 주요 기업의 ESG 개선에 중점을 두고 표결한다는 방침이다.
KIC는 지난 2018년 수탁자 책임에 대한 원칙(스튜어드십 원칙)을 제정한 후 이듬해 주주 권리 전문기관을 통해 KIC가 직접 운용하는 주식 포트폴리오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주요 투자 기업에 대해 KIC 내부 인력이 직접 의안을 분석해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한 것이다.
KIC 관계자는 “주주 자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의 기관 투자자들은 이미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통해 투자 기업의 가치를 제고해 왔다”며 “최근 아시아 국가에서도 책임투자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주주권 행사가 활발해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2021년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 조사에 따르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활용하는 투자자의 운용 자산 규모는 10조 5000억 달러에 달한다.
KIC는 앞으로 주주권 행사를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50개 사, 2025년에는 150개 사에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나아가 공개 주주 서한, 주요 이슈에 대한 경영진 미팅 등 보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도 검토하고 있다.
진승호 KIC 사장은“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국부펀드의 중대한 투자활동 중 하나”라며 “이를 통해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촉진하고, 중장기적으로 성공적인 ESG 투자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KIC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서 위탁받은 외화를 해외에서 운용하는 국부펀드로, 2005년 설립됐다. 운용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2050억 달러(약 270조 원)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