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년간 이어왔던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종료하는 배경에는 역대 최악의 세수 결손이 있다. 개소세 인하 조치가 종료될 경우 당장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차 값도 껑충 뛰고 이는 곧바로 소비심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 거리 두기 해제 조치로 겨우 훈풍이 부는 내수마저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경기 후퇴 국면에서 세수 부족이 심각해지자 경기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세수 정상화에 시동을 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올 4월까지 국세 누계 수입은 지난해보다 33조 9000억 원 줄어든 134조 원이다. 예산 대비 진도율은 33.5%로 정부가 관련 수치를 보유한 2000년 이후 가장 낮다. 정부는 올해 국세 수입을 총 400조 5000억 원으로 예상했다. 5월부터 국세가 지난해와 똑같이 걷히더라도 올해 연간 국세 수입은 세입 예산보다 38조 5000억 원 모자란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8조 원)은 물론 종전에 최대 세수 결손을 기록한 2014년의 10조 90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이에 재정 당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는 일단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강제적인 예산 불용(예산으로 편성했지만 쓰지 않음)도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조차도 제한적이다. 일각에서는 강제적인 불용도, 추경 편성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내놓고 있다.
정부가 개소세 인하 조치를 종료한 이유다. 물론 개소세 인하 종료에 따른 세수 감소 폭은 5000억 원 안팎에 머물 것으로 관측된다. 개소세 인하 조치가 1년 내내 이어지던 2021년 개소세 세수는 1조 4000억 원인데, 이를 역산하면 하반기 개소세 인하 조치 종료로 늘어나는 세액은 3000억 원에 불과하다. 2년 새 차량 판매량과 판매 단가가 늘었다고 하더라도 5000억 원을 넘기 어렵다. 하지만 역대급 세수 펑크 상황에서 5000억 원 안팎의 세수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정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세수 결손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내왔다. 지난해 말부터 세수 펑크가 우려됐지만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올 초까지만 해도 “세수 재추계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올 4월 초에는 “재추계를 언급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며 한발 후퇴했고 4월 말이 되자 다시 “내부적으로 재추계를 할 계획”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후 5월 말에는 “세수 재추계 결과를 8~9월에 공개하겠다”고 했다.
4월 유류세 인하 조치를 8월까지 4개월 연장했던 정부가 개소세 인하를 전격 종료한 데도 세수 펑크가 현실화하면서 그 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세제실의 절박감이 담겼다.
다만 이번 개소세 인하 종료 조치가 어려운 경기 상황에서도 구원투수 역할을 해왔던 자동차 산업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액이 11개월 연속 증가한 자동차는 생산도 본격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실제 4월 기준 자동차 생산은 1년 전보다 16.6% 많아졌다. 수출이 반 토막 난 반도체 부문에서 출하는 20.3% 감소하고 재고는 31.5% 급증한 것과 상반된다. 하지만 개소세 인하 조치가 종료되면 자동차 부문에서도 출하 감소→재고 급증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
내수 역시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 경제가 올 1분기 0.3%(전 분기 대비)라도 성장한 데는 민간소비가 0.5%로 성장 전환한 영향이 큰데 개소세 인하 조치 종료로 내수 경기마저 얼어붙으면 한국 경제는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개소세 인하 연장 요구를 계속해왔다. 당장 올 상반기까지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해소되면서 수요가 견조했지만 하반기부터 세율이 원상복귀되면 내수 시장이 냉랭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올 5월 한 달간 국내 완성차 5개사(현대차·기아·KG모빌리티·한국GM·르노코리아자동차)의 국내외 시장 판매량은 총 68만 2274대로 전년 동월 대비 15.4% 증가를 기록했다. 국내 판매량은 13만 300대로 전년 대비 8.8%, 해외는 55만 1974대로 17.1% 늘어나며 9개월 연속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하반기부터는 내수 판매가 상승세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상반기에 주를 이뤘던 신차 효과가 사라지는 데다 개소세 인하도 종료되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개소세 인하 연장을 전제로 하반기 내수 실적이 전년 동기와 비슷할 것으로 봤다”면서 “개소세 인하 조치가 없어지면 내수 판매가 감소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개소세 인하는 현금을 할인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기 때문에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면서 “개소세 인하 조치를 철회할 경우 자동차 시장 내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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